1998년, 전북 부안 산골 출신의 스물다섯살 청년이 광주에 정착했다. 손에 쥔 건 단돈 6만5000원. 할 줄 아는 건 운전뿐이어서 택시회사에 들어갔다. 택시기사, 가스통 배달, 족발집, 옷 장사 등 돈을 벌 수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지인의 권유로 광주 한 공장에 인력관리 담당자로 취직했다. 4년쯤 경험을 쌓은 뒤 2011년, 마침내 직접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불과 10여년 만에 상장사 2개를 포함해 계열사 5개를 둔 매출 1조원대 그룹사로 키워냈다. 신데렐라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중견기업 DH글로벌 이정권 회장이다.
5일 광주광역시 첨단산업단지 DH글로벌 본사에서 만난 이 회장은 “‘남들이 안 하는 것이 무엇일까’ 늘 고민하면서 사업을 했다”며 “부품사는 많지만,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많지 않아 역발상으로 완제품 제조 시장에 도전했다”고 떠올렸다. 도박에 가까운 도전은 성공했다. 국내 생산기지들이 해외로 이전하며 생긴 생산설비 공백을 이 회장이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이 회장은 OEM·ODM에 그치지 않고 식당용냉장고(쇼케이스), 소주냉장고, 제빙기 등을 자체 브랜드인 ‘스테닉(STENIQ)’ 이름을 달고 국내외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이 회장은 무노조 경영을 펼치고 있지만 근로자 근무환경 만큼은 여느 대기업 못지 않게 꾸미고 있다. 이 회장은 “과거 공장에서 일했을 때 느낀 바가 있어서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가장 신경쓰고, 구내 식당을 집밥처럼 최대한 맛있고 정성스럽게 제공한다”며 “회사에 공원을 조성했고, 휴게공간을 충분히 만들어 직원들이 일과 휴식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이 회장은 DH오토웨어와 DH오토리드 사업을 연계해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 회장은 “전장과 핸들을 붙여 묶음 영업하면 경쟁력을 더 갖추게 된다”며 “오는 7월 오토리드의 멕시코 공장이 완공되는 만큼 현대기아차뿐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로 고객을 더 확대하려고 한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올해 그룹 매출 1조2000억원, 영업이익 400억원대를 목표로 잡았다”며 “안정적인 수익을 기반으로 100년 기업 기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광주=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