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불확실성 대응, 장기적 수익성, 경쟁력 확보는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늘 금과옥조로 여겨야 할 임무다. 그런 이유로 올해 들어 높은 주가 상승률을 자랑하는 미국 빅테크(대형 기술기업)의 해고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지난 1월 미국 주식시장은 ‘효율을 먹고’ 질주했다. 그 가운데 인공지능(AI) 경영 가속화로 인간 위상의 추락이 도드라졌다. 그간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견해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지금만큼 해고의 실상이 참혹하고, 투자은행(IB)과 국제금융기구의 입장이 같다니 씁쓸하다.
정보기술(IT) 기업의 일자리 데이터를 추적하는 웹사이트 레이오프스는 지난해 기술업계의 누적 정리해고자 수를 26만2682명으로 추산했다. 2022년은 16만4969명이었다. 지난해 여름과 가을에는 해고가 주춤한 듯했다가, 새해 들어 미국 기술업계의 해고가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회사의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인 전략을 토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미국 경기 둔화 우려가 대량 해고의 주된 원인이 아니고, 경기가 회복해도 빅테크의 추가 고용 규모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골드만삭스와 국제통화기금(IMF)은 AI의 광범위한 채택이 노동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봤다. 그 결과 10년 동안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매년 7%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반면 두 기관 모두 일자리 감소 충격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 기술의 부상으로 세계 최대 3억 개 정규직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줄어들 수 있다고 봤다. 사무직 근로자가 가장 큰 위험에 처할 것으로 내다봤다. IMF는 세계 일자리의 약 40%가 AI 부상의 영향을 받는다고 전망했다. 선진국 일자리의 최대 60%가 AI 영향권에 든다는 IMF의 주장은 새해 구글 사례로 현실화했다. 구글이 AI 때문에 3만 명에 달하는 광고판매 부문 조직을 재편한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구글은 또 작년 초 1만2000여 명의 직원을 해고한 데 이어 새해에 추가 해고를 단행했다. 구글의 하드웨어 부서 인력 감축은 전사적인 AI 개발 집중 로드맵에 따른 것이다. 구글은 챗GPT와 경쟁하기 위해 바드를 선보이고 차세대 AI 모델 제미나이를 공개했다. 올해도 그 기조를 이어갈 예정이다.
많은 광고주가 실적 극대화를 원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부적격자’로 몰리고 있다. 광고 헤드라인 및 설명, 이미지 만들기만 해도 그렇다. AI가 자동 생성하고 제안하는 방식이 오히려 더 큰 효과를 낸다. 광고주가 AI 기반 플랫폼을 원하며 ‘인간 실격’을 외치고 있다. 구글이 감원 대상자 상당수에 내부적으로 다른 역할을 찾도록 하겠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효율성에 기반해 사상 최고의 역사를 쓰는 미국 주식시장을 보며 1월 주식시장에 장대비가 내린 한국 주식시장의 현실을 마주해 본다. 성장을 주도하는 AI 관련주가 금리를 이겼다는 함성 속에 미국의 경기 우려는 가라앉았다. 반대로 우리 주식시장은 어느 한 요인을 찾기 어렵게 오랜 기간 암흑 속에 있다. 그 해답의 하나로 아마존 자회사인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회사 트위치의 변을 들어보면 어떨까? 트위치 역시 아마존의 대규모 감원 조치에 따라 해고를 단행했다. 트위치는 이달 27일 한국 사업을 공식 철수한다. 이유는 뭘까?
트위치는 한국에서의 플랫폼 운영 비용이 다른 국가와 비교해 10배 많고, 네트워크 수수료 부담도 갈수록 가중해 운영이 힘들다고 밝혔다. 운영을 지속할수록 손실이 커지는 상황이라는데 버틸 장사가 있겠나. 대만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2021년 11월 말 사상 처음으로 한국 증시를 역전한 이후 그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GDP 규모는 우리가 대만의 두 배지만, 기업에 대한 투자자의 평가는 대만이 월등히 앞선다. 대만 증시 시가총액 1위 기업인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의 위상 못지않게 노동시장 유연성이 한 이유라는데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마주한 냉혹한 현실을 AI와 함께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AI가 던지는 새해 경영 화두는 다양하다.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된 우리 주식시장이 2월 초 그나마 나아지고 있으나 챗GPT에 이렇게 묻고 싶다. 한국의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 기업과 청년들이 얼마나 있냐고 말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