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한철 일감은 쏟아지는데 사고 날까 사람 뽑기는 무섭고…. 어디부터 손댈지도 모르겠고 이러다 회사가 먼저 쓰러지겠어요.”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시행된 지 1주일째인 지난 2일. 경기 고양시 장항동 인쇄문화단지 내 한 인쇄업체에서 일하는 안전관리자 A씨는 이같이 말했다.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에도 현장엔 근로자 15명이 남아 교과서를 찍어내고 있었다. 그는 “겨울은 새 학기 참고서·문제집 수요로 인쇄업계엔 말 그대로 ‘대목’”이라며 “이맘때면 인력을 더 뽑아 납기를 맞추는데 올해는 괜히 비숙련 신입을 뽑았다가 중대재해 폭탄을 맞을까 봐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고양인쇄문화허브센터에 따르면 경기 일산동구 내 인쇄업체는 총 700여 곳으로 이 중 300곳 가까운 회사가 이번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을 받는다. A씨는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친분이 있는 회사들인데 모두 패닉 상태”라며 “국회에서 법 시행 유예안이 처리될 거라고 대부분 예상했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크다”고 말했다.
사업주들은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공공기관 소식지 등을 인쇄하는 카피에스스토리의 이남훈 대표는 “법 시행 전 외부 기관을 통해 중대재해법 대비 교육을 다섯 번 정도 들었다”며 “그런데 노무사에게 현장에서 발생할 법한 상황을 물어보면 아예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력도 없는 영세 업체에 그냥 처벌 부담만 지운 것 같다는 생각에 참담하다”고 했다.
또 다른 입주 업체 대표인 B씨는 “지금까지 이해한 내용이라면 ‘직원이 사망하면 내가 징역을 살아야 하는구나’뿐”이라고 법 시행에 반감을 나타냈다.
인쇄단지 현장에서 만나본 안전관리자들은 사고 가능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반응이었다. 업체들의 공통적인 걱정은 벤젠, 톨루엔 등 화학약품으로 인한 질병 재해다. 근로자 수 13명인 다른 인쇄업체 관계자는 “산업용 방독면을 갖다 놔도 쓰는 사람만 쓴다”며 “공장 환기 시설을 완전히 다 뜯어고쳐야 하는데 당장 투자할 여윳돈도 없어 그냥 막막하고 한숨만 나온다”고 하소연했다.
흔히 발생하는 지게차 사고 재해도 마찬가지다. 그는 “1주일 전부터는 지게차 사고 예방을 위해 화물 운반대 종이 묶음을 3단 이상으로 못 쌓게 하는 등 조심하고 있다”면서도 “내가 24시간 대기할 수도 없고 나 없을 때 사고 나면 어쩌나 조마조마해 요새 잠도 못 잔다”고 고민했다.
밀어붙이기식 ‘처벌공포법’ 시행이 영세기업의 인력 수급 문제까지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현장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영세기업 필수인력이 돼 버린 외국인 근로자 관리가 대표적이다. 23명의 근로자를 둔 인쇄업체 관계자는 “안전 교육을 하면 외국인 근로자들은 자신을 무시해서 잔소리한다고 생각한다”며 “신규 인력을 뽑기 어려운 상황인데 외국인 근로자들까지 나가버리면 어떡하나 싶다”고 우려했다.
고양=김동주 기자 djdd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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