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그룹 회장과 관련자 전원이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법조계에서는 무리한 기소였다는 반응이 나온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 중단, 불기소’를 권고했음에도 검찰이 기소를 밀어붙이면서 이 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경영진은 장기간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총수가 수사와 재판에 묶이면서 삼성그룹의 글로벌 이미지 손상은 물론 공격적 투자 행보에도 제약을 받으며 글로벌 경쟁력이 훼손되는 등 유무형의 막대한 손실을 봤다.
수사심의위는 2018년 검찰이 수사의 중립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구성한 조직이다. 수사심의위 의견을 검찰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검찰은 이 회장의 불법승계 의혹 이전까지 열린 여덟 차례 수사심의위에서 나온 권고를 모두 받아들였다. 검찰은 가장 최근 사례인 ‘이태원 참사’를 두고도 수사심의위 권고대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그해 9월 1일 검찰은 그간의 선례를 뒤집고 이 회장을 재판에 넘겼다. 석 달 전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는 없었던 ‘업무상 배임’ 혐의까지 추가했다. 수사심의위 의견을 고려해 기소 대상자를 최소화할 것이란 관측과 달리 14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경제범죄형사부장으로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이 원장은 당시 기소가 무리한 결정인지를 두고선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이날 1심 판결 이전에 열린 금감원 기자간담회에서 “(판결에 대해선) 의견을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이 회장이 판결을 계기로 심기일전할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그룹이 사법 리스크를 일단락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 수사가 2018년 12월 시작됐음을 고려하면 이 사건으로만 5년2개월간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수사 기록 19만여 쪽, 증거 2만3000여 개, 의견서 600여 개를 동원해 이 회장 등의 유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정에 선 증인도 80명에 달했다.
이 회장은 이번 사건에 휘말린 이후 장기간 법원 출석 등으로 글로벌 경영 활동에 큰 제약을 받았다. 삼성그룹의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에도 힘이 실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심에서 무죄를 인정받으면서 사법 리스크가 다소 해소됐지만 검찰의 항소로 재판은 계속 받아야 한다. 이 사건이 대법원까지 간다면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 최소 3~4년은 더 걸릴 것이란 관측이 많다.
김진성/권용훈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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