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고액 자산가들이 미국·일본·인도 시장에 뭉칫돈을 넣고 있다. 반면 중국 증시에서는 서둘러 돈을 빼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으로 승승장구하는 미국 증시와 엔저 효과를 누리는 일본 증시가 압도적인 상승률을 보인 반면 한국·중국 펀드들은 경기 부진으로 수익률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지역별 수익률 격차가 심해지면서 글로벌 ‘머니무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S&P500은 최근 1년간 17% 넘게 오르며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달 30일에는 종가 기준 4927.93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34년 만에 증시 최고점을 기록한 일본 주식형펀드는 최근 3개월만 따지면 18.15%로 미국 펀드(16.71%)보다 더욱 높은 수익률을 거뒀다.
반면 중국 펀드는 1년 수익률 -30.32%, 중화권 펀드는 -46.87%로 전체 유형별 해외주식형펀드 중 뒤에서 1, 2위였다. 특히 중국 펀드는 연말 연초 증시 낙폭이 커지면서 최근 3개월 수익률이 -25.04%로 고꾸라졌다. 한국 주식형펀드도 중국 경기 부진의 여파를 맞으며 최근 6개월 기준 수익률이 -7.3%에 그쳤다.
자산가들은 미국 펀드에 뭉칫돈을 넣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개월간 미국 펀드에 5602억원이 순유입됐다. 최근 6개월로 보면 1조3609억원어치가 들어왔다. 미국 펀드는 늘 자산가 사이에서 인기 상품이었지만 최근과 같은 투자 열기는 이례적이란 게 강남권 프라이빗뱅커(PB)들의 전언이다.
서울 강남의 한 PB는 “온디바이스 AI가 올해 투자의 핵심 포인트로 떠오르면서 이를 선도하는 미국 기업에 투자가 몰리고 있다”며 “미국 증시에 투자할 수 있는 다양한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인도 시장은 작년부터 중국을 대체하는 글로벌 생산공장으로 떠오르면서 외국인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올해 경제성장률 추이를 보면 인도는 유일하게 경제성장률이 6% 넘는 신흥국이어서 외국인의 기대가 가장 크다”고 했다.
반면 국내 투자자의 필수상품으로 꼽히던 중국 펀드에선 썰물처럼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중국 펀드의 설정액 규모는 지난해 8월 약 9조5000억원에서 현재 6조8416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중국 경제의 높은 성장률을 믿고 투자했지만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견디다 못한 투자자들이 ‘손절매’에 나선 것이다.
한국 증시에서도 자금 이탈 조짐이 보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 1일 기준 52조476억원으로 작년 말 대비 7조4472억원 감소했다. 올해 유가증권시장 하루평균 거래대금은 9조2948억원으로 지난해(9조6026억원)보다 3.2% 감소했다.
배태웅/최만수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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