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끝자락, 북한산 소귀천 매표소를 지나야 겨우 그 모습을 드러내는 ‘선운각’. 1967년 문을 연 이곳은 현재 서울에서 왕궁을 제외하고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한옥이다. 한 겨울의 흔적이 아직 선명히 남아 있는 한옥집으로 도시 여성들을 부르는 초대장이 날아들었다.
'당신의 삶은 어디에 있나요'란 질문, 그리고 운동복과 함께 은밀한 초대장을 보낸 이는 스포츠 브랜드의 대표주자 나이키. ‘나이키 웰 콜렉티브’라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진 행사 ‘서울 웰니스 데이’로의 초대다. 그렇게 쉴 틈이라곤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 속 북한산에 ‘스스로 갇히러 온’ 여성들의 특별한 웰니스 여정이 시작됐다.
같은 서울이더라도 중심지에서 한 시간을 넘게 써야 도착하는 북한산. 서로의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처음 모인 여성들은 각양각색의 이유로 여유라곤 없었다. 모두가 운동복을 입었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펼쳐놓고 일을 하는 사람, 걸려 온 업무 전화를 끊지 못하는 사람, 사진 각도를 잡으려 애쓰는 사람 …. 모두 바쁜 도시의 옷을 벗어버리지 못한 모습이다.
바쁘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 위로 ‘어떤 향’이 퍼지기 시작한다. 산 속에서 무엇인가를 태우는 것 같기도, 또 차를 달이는 것 같기도 한 특이한 향기다. 향이 퍼지자마자 모인 사람들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노트북을 덮고, 전화를 끊은 채 향기에만 집중하기 시작한다.
향기의 정체는 ‘티 아티스트’ 김담비가 차와 스머지 스틱을 이용해 선보인 오프닝 세리모니. 자연스레 ‘불쾌한 냄새’에만 신경을 쏟게 되는 현대인의 현실을 벗어나 ‘향기’라는 인간이 가진 원초적 감각에 집중할 수 있게 의도한 퍼포먼스다. 그렇게 ‘나이키 서울 웰니스 데이’의 막이 올랐다.
아직 장소와 사람 사이 어색함을 벗지 못한 이들에게 ‘연결’이라는 제목의 ‘마음 풀기’ 세션이 시작됐다. 안무가로 활동하는 모니카와 리정, 요가 강사 아미라, 피겨 스케이터 김예림이 선운각을 찾아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고백했다.
각자의 삶과 고민들을 나누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공감이라는 강력한 감정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날 가장 화두에 올랐던 질문은 ‘과연 건강한 삶이란 무엇인가’. 모두 직업도 분야도 다르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건강한 인생이란,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
마음을 풀어냈으니 다음 단계는 ‘몸 풀기, 움직임’이다. 부쩍 서로를 알게 된 여성들 앞에 놓인 건 광활한 한옥 마룻바닥과 요가 매트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누워서 요가를 하라고?’라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요가를 단 한번도 해 본적 없는 사람, 유연성이라곤 없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부끄러운 사람까지 모두가 머뭇거리기 시작한다.
“요가는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마치 모두의 생각을 읽어내듯 요가 강사 아미라가 한 마디를 던졌다. 현대인들은 눈이 항상 바쁩니다. ‘내가 겉으로 어떻게 보여질까’에 너무 집중하죠.”라며 운을 뗀 그는 “요가는 눈이 아닌 다른 감각에 집중해야 합니다. 내 몸의 자극점과 자세만 느끼고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하는지는 관심을 두지 마세요”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시작된 요가 시간. ‘창피한 나의 모습’에 머뭇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모두가 오직 앞에 선 요가 강사의 목소리와 동작에만 집중한다. 앞에서 동작 시연을 보이는 강사와 똑같이 해야 한다는 강박도 벗어낸 지 오래다. ‘몸이 있는 곳에 생각도 있어야 한다’는 요가의 원칙처럼, 업무와 일상을 잊은 채 오직 매트 위의 작은 ‘내 세상’에만 한시간 내내 집중할 수 있었다.
1분이 한 시간처럼 흐른다는 플랭크 자세, 한 다리와 팔로 몸무게 전체를 지탱해야 하는 사이드 플랭크 등 고난이도 동작이 이어졌다. 처음 마주하는 이들과 땀을 흘리는 귀중한 경험 속 터져나오는 곡소리와 탄성은 순수한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땀을 흘린 모두에게 주어진 다음 코스는 ‘후각과 깨우기’다. 처음 향기로 인사를 나눴던 김담비 작가와 함께 나만을 위한 ‘스머지 스틱 만들기’에 돌입했다. “휴식이 필요한 사람, 긍정적인 생기가 필요한 사람에 따라 필요한 허브가 다르다”고 말하는 김 작가. 그는 참가한 여성들 각각의 마음 상태를 미리 듣고 이에 맞춰 박스 안에 각기 다른 허브들을 준비해뒀다.
재료를 원하는 만큼 실로, 종이로 묶고 엮어 자신만의 허브 꽂다발을 만든 이들은 어느새 자연이 주는 향기에만 빠져들었다. 대화도 멈춘 순간이었다. 만든 스머지 스틱은 직접 집에 걸어 말리거나, 태우며 향기가 퍼지게 하면 된다. 이 한옥을 빠져나가 다시 도시에 돌아가도 ‘향기’라는 감각을 잊지 않도록 한 김 작가의 센스다.
이제 배를 채울 시간. 왔던 길을 다시 돌아 처음 만난 장소에서 다시 마주한 여성들은 첫 만남의 분주함과 어색함은 모두 잊은 모습이었다. 아직 이름은 모르지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오늘 하루의 이야기를 거들며 식사가 시작된다. 식사의 컨셉은 ‘입말음식’이다. 말 그대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레시피를 토대로 만든 음식이라는 뜻이다.
‘겨울의 단백질, 지방, 미네랄’이라는 세 개의 코스로 식사가 준비됐다. 제주도와 전북, 경북의 지역 재료로 만든 갖가지 음식들이 식탁 위에 올랐다. 귤 김치, 곶감 약밥, 옥수수 약과 등 가공음식 대신 우리 땅에서 난 자연의 재료로 건강과 허기를 동시에 채울 수 있는 ‘미식의 시간’이었다. 식사가 모두 끝난 후에는 제주에서 이어 온 전통 방식처럼 앞에 놓인 촛불에 ‘잣’을 태우며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이날 반나절 넘게 몸을 움직인 웰니스 행사에서 가장 돋보인 건 나이키가 초대장과 함께 보낸 ‘운동복’이었다. 행사에 참석한 여성들은 자신의 체형과 취향에 따라 원하는 대로 맞춘 운동복을 입었다. 몸과 마음이 분주했던 일정 내내 단 한명도 옷과 신발의 불편을 토로하는 참가자는 없었다.
나이키가 이날 오직 여성들만 모아 한옥에 초대한 것도 여기에 비밀이 있다. 나이키는 여성 제품 선택권을 넓히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람마다 즐기는 종목과 원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피겨스케이팅, 달리기 등 현역에서 뛰는 다양한 분야의 스포츠 선수들에게 운동복 자문을 맡기기까지 했다.
실제 이날 이야기를 나눈 피겨 선수 김예림은 “운동복은 패션을 넘어 삶의 일부가 된 것 같다”며 “운동을 할 때 원하는 대로 옷이 잘 맞는다면 그것만큼 마음이 쉽게 채워지는 경험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8차선 도로에서 각자의 이유와 생각으로 ‘경주마’처럼 현실을 달려나가는 현대인들에게 꿈과 같았던 ‘웰니스 데이’는 스스로를 위한 여유와 쉼의 필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