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로 미국 최고 권위의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른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36·사진)이 6일 화상으로 국내 언론과 만났다. 송 감독은 “(한국을 떠나 살아온) 저의 어린 시절 인연을 돌아보며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한국의 공간과 언어뿐 아니라 철학까지 녹아든 작품이 태어났다”고 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제96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다음달 10일 열리는 시상식에서 ‘플라워 킬링 문’의 마틴 스코세이지, ‘오펜하이머’의 크리스토퍼 놀런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들과 최종 수상을 놓고 경쟁한다.
한국계 여성 감독이 작품상 후보로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성 감독의 데뷔작이 아카데미 시상식의 문을 두드린 것도 이례적이다. 94년간의 아카데미 역사에서 랜다 헤인즈의 ‘작은 신의 아이들’(1986), 그레타 워윅의 ‘레이디 버드’(2017) 등이 작품상 후보에 올랐을 뿐이다. 한국계 감독 영화로는 2020년 봉준호의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았고, 2021년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의 ‘미나리’도 후보가 됐다.
송 감독은 한국계 선배 감독과 세계적으로 유행한 K컬처의 공을 치켜세웠다. “영화 ‘기생충’을 계기로 해외 관객들이 한국어 자막이나 문화적 요소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 덕을 본 것 같아요. K팝과 K드라마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고요. 하하.”
셀린 송 감독은 ‘넘버 3’(1997) 등을 연출한 송능한 감독의 딸이다. 열두 살에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 간 뒤 미국 뉴욕에서 극작가로 활동했다. 한국 만재도 해녀들의 이야기와 이민 1.5세대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연극 ‘엔들링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24년 전, 12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인연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연극이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에 도전했다”고 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다음달 6일 국내 개봉한다.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 분)과 ‘해성’(유태오 분)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재회한 이틀간의 시간을 그렸다. 나영은 마치 송 감독이 실제로 겪은 대로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 가서 미국인 남성과 결혼한다.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첫사랑 서사지만, 감독은 인연이라는 키워드로 이야기로 엮어냈다. ‘전생’과 ‘회자정리’ 등 불교 철학을 통해 두 인물의 끊어질 듯 이어진 관계를 절절하게 다뤘다. 송 감독은 “우리는 모두 언제나 어딘가에 두고 온 삶이 있다”며 “우리 인생은 여러 가지 시간을 지니고 있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순간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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