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성사시킨 글로벌 비즈니스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최근 만난 삼성 최고위 임원의 말이다. 삼성전자가 2020년 미국 통신업체 버라이즌과 체결한 8조원 규모 통신장비 공급부터 지난해 테슬라로부터 수주한 자율주행 칩까지, 굵직한 계약의 막후엔 이 회장의 단단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있었다는 얘기다.
10년 가까이 이 회장을 옭아맨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 만큼 그의 글로벌 경영 행보는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 회장이 무죄 판결을 받은 이튿날 곧바로 중동·동남아시아 출장길에 오른 것만 봐도 그렇다. 이 회장은 신시장을 점검하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는 데 전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시장을 점검해야 할 시간에 이 회장은 재판정에 있었다. 2021년 4월부터 이달 5일까지 2년10개월간 법원에 출석한 횟수만 96회에 달했다. 그러다 보니 법정이 쉬는 기간만 골라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앞으론 달라질 전망이다. 지난 5일 무죄 판결 이후 경영활동의 족쇄가 풀렸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6일 중동·동남아 출장을 시작으로 이달 하순엔 유럽 출장까지 소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출장지로 거론되는 독일은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완성차 업체와 자동차 부품업체 천국이다. 차량용 반도체와 자동차 전장(전자장치)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삼성전자가 가장 눈독을 들이는 업체들이다.
이 회장은 11년 만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 콘퍼런스인 ‘MWC 2024’에서 6G(6세대) 사업 기회를 찾는 방안도 모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계 관계자는 “‘초일류 삼성’을 위한 이 회장의 해외 구상이 시동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의 해외 출장은 ‘현지 사업 점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해당 국가 수반이나 유력 기업인 등 ‘빅 샷’들과 끈끈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쌓은 이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삼성전자에 여러 차례 신사업 기회를 안겨줬다.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자율주행 칩 관련 협력 관계를 단단하게 한 것이 대표적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1년에 두세 차례 만나 스마트시티 사업에서 수주 성과를 내기도 했다.
삼성은 이 회장의 무죄 판결을 계기로 신사업 개발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자체 생성형 AI ‘가우스’를 고도화하고 갤럭시S24 등 ‘AI폰’ 경쟁력 강화, AI 반도체 개발 등에 속도를 낼 것이란 얘기다.
이 회장은 6G 이동통신 기술 개발을 통해 미래 네트워크 시장 선점에도 힘을 쏟고 있다. 6G 통신장비 개발과 납품에 필수적인 글로벌 통신사와의 협업엔 이 회장이 직접 나설 계획이다. 로봇 시장과 관련해선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공개한 ‘볼리’ 등 가정용 로봇뿐만 아니라 인간과 업무를 함께할 수 있는 ‘협동 로봇’ 개발에도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황정수/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