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80억달러를 투입한 이 공장 가동 시점은 올해 말에서 내년 초로 연기됐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오락가락하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다. 미국은 2022년 중국 견제를 위해 자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파격적인 세액공제 혜택, 보조금 등을 주는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발맞춰 삼성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현지 투자를 확대하자, 미국은 얼굴을 바꿔 초과이익에 대해 반납을 요구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며 보조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삼성전자로선 난감한 상황이다. 보조금이 줄어들면 굳이 큰돈을 들여 투자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테일러 공장은 삼성전자의 역대 미국 투자 중 최대 규모다. 게다가 삼성으로선 공장 가동 시기를 더 늦출 수도 없다. 2030년까지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 TSMC를 따라잡고 시스템 반도체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테일러 공장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사장) 등 경영진이 수시로 미국으로 건너가 물밑 협상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삼성은 단단한 미국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 이 회장이 자유로운 몸이 된 만큼 테일러 공장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회장 앞에 놓인 과제는 이뿐이 아니다. 미·중 갈등에서 시작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여파로 삼성전자도 해외 생산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서다. 당장 유럽 시장 진출 여부가 고민거리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반도체 공급에 430억유로 투자 계획을 밝히며 반도체 자립에 나서고 있다. 경쟁사인 인텔이나 TSMC 등은 이미 유럽 현지 투자를 진행했거나 추진 중이다. 삼성전자가 유럽시장에서 경쟁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공장 설립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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