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분쟁은 절대로 드라마나 영화 속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릴 적 오빠 도시락에만 싸준 계란 프라이 하나가 결국 수십년 후 진흙탕 싸움의 불씨가 되는 일이 숱합니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사법연수원 31기·사진)는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강조했다. 그는 “재벌 회장조차 상속분쟁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일이 커진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내 죽음과 그 이후 재산분배를 미리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불쾌하고 불편한 일이지만 반드시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2013년부터 6년간 서울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사건을 전담하다 2019년 율촌에 합류해 개인자산관리센터, 상속가업승계팀, 가사후견팀을 이끌고 있다. 판사 시절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성년후견 사건을 맡았고, 현재 상속분쟁 중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대리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다뤘던 가사사건 이야기를 법률지식과 함께 풀어낸 ‘아직은 가족, 끝까지 가족’이란 책을 최근 출간해 주목받고 있다.
김 변호사는 ‘불공평한 대우를 받아왔다’는 응어리가 치유되지 않은 채 오랫동안 곪은 것이 결국 상속분쟁을 촉발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가족간 갈등을 억제해왔던 부모가 돌아가신 후 장기간 쌓여왔던 불만이 폭발한 것이 유산을 둘러싼 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라며 “‘너는 부모님이 유학도 보내줬지만 난 고등학교밖에 못 나왔다. 넌 그동안 받은게 많았으니까 유산은 내가 더 받아야 한다’는 식의 다툼이 적나라하게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분쟁 양상은 재벌이나 일반 중산층이나 다를 게 없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고령화로 다양한 형태의 상속분쟁이 늘고있다고 봤다. 김 변호사는 “과거엔 형제들간 다툼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가족 중에서도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삼촌이나 고모가 조카와 싸우거나, 재혼한 배우자가 피가 안섞인 자녀와 분쟁을 벌이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부모가 과거에는 사망했을 나이에 치매 등으로 인지능력을 상실하면서 자녀들이 후견인 지위를 두고 다투는 사건 역시 요즘 두드러지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평소 가족간 대화를 통해 응어리를 치유해야 상속문제로 가족이 해체 수준의 파국을 맞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유언이나 유언대용신탁 등을 통해 어느 정도는 내 뜻대로 재산이 분배되도록 설계할 수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차원”이라며 “결국 근본적인 이유인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녀들도 ‘부모의 재산은 당연히 내 것’이란 인식에서 벗어나 부모의 유산을 통해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더 생각해줬으면 한다”고도 했다.
김 변호사는 시대에 맞지않는 상속제도를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극적으로 내놓았다. 그가 ‘상속제도의 지뢰밭’이라고 표현한 유류분 제도가 대표적이다. 유류분은 고인의 뜻과 무관하게 상속인들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유산 비율을 말한다. 국내 민법이 처음 제정됐던 1955년에는 없었다가 1977년 도입됐다. 농경사회 때의 ‘가산’ 개념과 ‘장자 상속주의’가 깊게 깔려있던 상황에서 재산을 물려주려는 사람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면 나머지 가족들이 불이익을 받을 것이란 지적을 반영해 만들어졌다.
현재 배우자와 직계비속(자녀 등)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부모 등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보장받고 있다. 한국과 달리 독일에선 직계비속과 부모, 배우자만 유류분을 보장받는다. 오스트리아는 직계비속, 배우자, 등록된 동반자가 유류분을 받을 자격이 있다. 프랑스는 모든 직계혈족이 유류분을 받을 권리를 가졌지만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몫과 유류분이 따로 분리돼있다. 미국의 경우엔 유언대로 재산을 분배하는 게 최우선이다. 유언이 없었을 때 배우자가 재산의 2분의 1, 자녀가 나머지 2분의 1을 똑같이 나눠갖도록 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과거와 달리 핵가족이 보편화한 지금도 유류분 적용범위와 비율을 똑같이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특히 오래 전 관계가 끊어진 사람이나 가족을 학대했던 사람에게도 ‘핏줄’이란 이유로 상속자격을 주는 게 맞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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