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낸대 한국 중산층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던 피아노가 사라지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해 피아노 수요가 급감하고 아파트 생활권이 강화되면서 층간소음 이슈의 원인으로 몰려서다.
7일 중고 피아노 업계에 따르면 피아노 한 대에 드는 수거 비용은 8만~10만원 선이다. 고가에 구매된 피아노들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그대로 버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국남 세븐피아노 대표는 "하루에 네다섯대를 수거하면 한 대 정도가 중고로 팔린다"며 "30~40년 된 피아노들이 대부분인데 수요가 너무 없다 보니 폐기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전 대표는 "고철값 밖에 나오지 않다 보니 수거비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고철값도 몇만 원 남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고 피아노는 부품을 교체하고 적절한 조율을 거치면 전공자들에게 '가성비'로 인기가 높다. 다만 음악학원·일반 가정집 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아노 중 상품 가치가 있는 피아노는 드문데다 이마저도 일본 등 해외에서 수입되는 중고 피아노와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이우희 포리피아노 대표는 "폐업하는 학원의 피아노들은 사용 횟수가 많이 누적돼 대부분 전량 폐기된다"며 "야마하나 가와이 등 일본 고급 피아노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비싸게 수출되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피아노 감소의 원인으로 저출산으로 인한 수요 급감을 꼽는다.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학급별 학생 수는 유치원이 16.1명, 초등학교가 20.7명이었다. 2014년 같은 항목에서 유치원이 19.7명, 초등학교가 22.8명이었다. 10년 새 한 반에서 세 명이 빠져나간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로운 피아노를 구매할 유인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한 악기 업계 관계자는 "저출산 현상이 심화하면서 단체로 원생을 받는 학원보다는 개인 레슨이 선호되는 추세"라며 "레슨생과 협의해 연습실을 빌리거나 방문 레슨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중산층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과거에 비해 희석된 점도 있다. 전국이 아파트 생활권으로 접어들면서 거주민들이 층간소음 이슈에 더욱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한국환경공단 산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접수된 층간소음 민원 건수는 32만9744건에 달했다. 특히 1만~2만건 대에 그쳤던 2019년까지와는 달리 코로나19로 인해 이동이 제한된 2020년 이후부터는 평균적으로 4만건 대의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
악기 업계는 휴대성과 성능을 동시에 갖춘 디지털 피아노 시장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어쿠스틱 피아노와 디지털 피아노의 매출 격차는 벌어진 지 오래"라며 "보면대와 받침대 없이 들고 다닐 만큼 휴대성이 좋거나, 각종 음악 작업을 핸드폰으로 처리할 수 있는 디지털 피아노는 그나마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