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12년의 희망고문, 마트규제 철폐

입력 2024-02-07 18:09   수정 2024-02-08 00:25

17만 가구, 40만7000명이 거주하는 서울 서초구는 강남구와 함께 전국에서 구매력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대형마트 3곳과 기업형슈퍼마켓(SSM) 31곳이 서초구에서 영업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둘째·넷째 일요일엔 문을 닫아야 했다. 2012년 시작돼 요지부동 바뀌지 않고 있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탓이다.

지난달 29일은 넷째 일요일이었다. 모처럼 서초구 곳곳에 활기가 돌았다. 마트와 SSM이 일제히 문을 열자 쇼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2년 만의 ‘넷째 일요일 영업’은 서초구의 결단에서 비롯됐다. 결단이란 평가가 결코 과하지 않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매월 공휴일 이틀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되,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공휴일이 아닌 날을 휴업일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규제 최대 피해자는 소비자
조례만 바꾸면 평일 휴업이 가능한데도 서울 25개 구는 눈치만 봤다. 목소리 큰 골목상권 상인들을 의식한 구청장들은 나서길 꺼렸다. 낡은 규제를 깰 용기를 서초구가 먼저 낸 것이다. 시대착오적 규제 완화의 효과는 즉각적이고, 연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점포별 차이가 있지만, 평일 영업 때보다 매출이 최대 50% 늘었다고 한다. 유통기업만 득을 보는 것도 아니다. 납품 제조업체, 마트에 입점한 가게, 식당 커피숍 등 주변 상권도 손님이 늘어 혜택을 받는다.

규제의 최대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소비자였다. 집 근처에 마트와 SMM을 두고도 급하게 물건을 살 일이 생기면 먼 곳까지 장을 보러 다녀야 했다. 큰 불편에도 조직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되지 않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품 구매만 놓고 보면 그럴 수 있다. 온라인이 더 싸게 물건을 파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쇼핑은 다른 차원의 만족과 행복을 주곤 한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식사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마트다. 요즘 리모델링한 곳의 시설은 쾌적하기 이를 데 없다.
조례 개정에만 기댈 수 없어
산업적으로 따져보면 의무휴일보다 영업시간 제한(0시~오전 10시)이 더 가혹하다. 전국 점포를 물류 거점으로 삼아 인근 지역에 배송할 수 있는 사업 기회를 원천 차단해 버렸다. 그사이 대형마트는 쿠팡 등 e커머스에 속수무책으로 시장을 잠식당했다. 뒤늦게 조 단위 투자로 초대형 물류센터를 별도로 구축했지만, 온라인 배송지역은 제한적이다. 영업시간 제한이 풀려도 점포별 배송망 구축 비용과 효율성을 따져봐야 한다. 영업시간 규제가 없었다면 400개에 육박하는 전국 대형마트를 통해 더 많은 지역과 연령대의 소비자들이 새벽 배송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은 탄식처럼 들린다.

정부가 뒤늦게 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풀겠다고 했지만, 나서는 지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다. 조례 개정에 의존하기보다 법을 개정 또는 폐지하는 게 빠른 길이다. 골목상권 보호라는 규제 도입 취지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연구와 조사 결과는 쌓여 있다. 법 개정에 미온적인 야당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도 안 되면 소비자 불편을 백안시하는 정치세력에 투표의 힘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마트 영업규제 철폐라는 희망 고문은 12년이면 족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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