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식품·유통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 사이에선 '스터디를 위해 홍대입구역을 꼭 한 번 가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팝업스토어나, 명품 브랜드 매장 때문이 아니다. 홍대 인근에 있는 편의점 '라면 라이브러리'(CU 홍대상상점) 때문이다.
이곳은 척 보기에도 여느 편의점과 다르다. 마치 책이 빼곡히 들어선 책장처럼, 매장 한쪽 벽면을 수백 여개의 봉지 라면이 꽉 채우고 있다. 그 옆에는 라면을 직접 끓여 먹을 수 있는 즉석조리기와 컵라면 모양 식탁도 있다.
팝업스토어 같은 신선한 비쥬얼과 체험형 공간을 합쳐놓은 덕분에 라면 라이브러리는 지난해 12월 4일 문을 연 직후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됐다. 편의점이 관광객 인기 코스가 된 건 드문 일이다.
이곳을 기획한 건 지난해 8월 BGF리테일에 경력 입사한 황보 민 가공식품팀 상품기획자(MD·36)다. 그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K콘텐츠가 인기를 얻으면서 라면을 직접 끓여먹는 걸 동경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졌는데, 편의점을 이런 로망을 직접 실현해주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입사 반 년도 채 안 된 그가 '라면 라이브러리'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지난해 말. 'CU 주류 특화 매장을 이을 새로운 매장을 만들어보라'는 미션을 받으면서부터다. 그는 국내에 거의 모든 팝업스토어, 맛집, 유명 거리 등을 훑고 다녔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뭘 들고 다니는지, 젊은층이 어떤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지를 샅샅이 살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게 '봉지라면'이었다. "해외에도 라면 특화 매장이 있지만, 번들 형태로 구매하는 게 대부분이더라고요. 낱개로 된 봉지라면을 한데 모아서 진열하면 '인증샷'을 찍을 만한 비쥬얼과 함께 쇼핑하는 재미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디어 구상부터 매장 개점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한 달 반. 그 사이에 황보 MD는 주말도, 휴일도 없이 매일 매장으로 출근했다. 그는 "라면을 어떤 순서로 진열할지, 마감재는 뭘 쓸지 등 세세한 것까지 모두 살폈다"며 "처음에는 봉지라면을 회사별·재료별로 진열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 가장 궁금해 할 매운맛 순서대로 보여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매장 이름 역시 '도서관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라면이 다 있다'는 뜻을 담아 '라면 라이브러리(도서관)'로 지었다.
외국인뿐만이 아니다.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간편하게 끼니를 때우거나, 해장할 수 있는 장소로 입소문이 났다. 지난해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 4시간 동안엔 매출 400만원을 찍기도 했다.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라면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도 이곳의 강점이다. 황보 MD는 "'세상의 모든 라면을 보여주자'는 콘셉트에 맞춰 해외 라면뿐 아니라, 지역 특산물 라면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라면도 확보했다"며 "한 라면 제조사 임원이 와서 단종된 라면을 다시 생산할 테니, 이곳에 진열해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라면 라이브러리를 '테스트베드'로 삼는 곳도 생겼다. 최근 풀무원은 서울시와 손 잡고 만든 '로스팅 서울라면'을 이곳에서 시범 판매하기로 했다. 반응을 보고 판매량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BGF리테일은 라면 제조사들과 함께 'K라면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더 알리자'는 데 공감대를 모아 2월 한 달간 라면 라이브러리의 모든 제품을 50% 할인하기로 했다.
BGF리테일은 홍대상상점의 성공을 발판 삼아 라면 특화 매장을 늘릴 예정이다. 현재 2호점을 어디에 낼 지 논의 중이다. 황보 MD는 "앞으로 라면 라이브러리를 통해 지역맛집 등과 협업한 새로운 라면도 개발해서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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