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설과 추석은 남들처럼 ‘쉬는 날’이 아니다. 공장과 사무실 문을 닫는 국내 사업장과 달리 숨 가쁘게 돌아가는 해외 사업 현장을 찾는 시간이다.
올해 이 회장이 점찍은 곳은 삼성SDI의 말레이시아 2차전지 공장. 지난 7년여간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등으로 이 회장이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는 동안 투자 적기를 놓친 배터리 사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찾았다는 분석이다. 이 회장이 현지에서 “어렵다고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게 투자해야 한다. 단기 실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과감한 도전으로 변화를 주도하자”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회장이 배터리 공장을 콕 집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2차전지 시장은 지난해부터 전기차 수요 둔화로 주춤해졌지만 여전히 성장성이 큰 산업이자 삼성의 미래 먹거리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방문한 스름반 공장은 삼성SDI의 주요 배터리 공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2012년부터 생산을 시작해 1공장을 가동 중이다. 1조7000억원을 들여 2공장을 짓고 있다. 삼성SDI는 그간 각형, 원통형 배터리 위주로 제조하다가 최근엔 원통형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생산시설을 늘리고 있다. 내년 완공 예정인 2공장에선 올해부터 ‘프라이맥스(PRiMX) 21700’ 원통형 배터리 제조를 시작한다.
시장의 관심은 이 회장이 “어렵다고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밝힌 만큼 삼성이 배터리에 얼마나 투자하느냐에 쏠려 있다. 그동안 국내외 배터리 기업이 목돈을 투자한 것과 달리 삼성은 ‘몸집 불리기’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삼성SDI의 지난해 전기차용 배터리 점유율은 4.6%로 7위에 그쳤다. 1위인 중국 CATL(36.8%)은 물론 국내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13.6%)에도 크게 밀렸다.
이런 점을 감안해 업계에선 이 회장이 다음으로 찾을 장소가 반도체와 스마트폰 현장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두 부문 모두 지난해 삼성이 각각 인텔(매출 기준)과 애플(출하량 기준)에 ‘챔피언 벨트’를 내줬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이번 말레이시아 방문에서도 세계 최초로 출시한 인공지능(AI)폰 갤럭시S24 등 전략 정보기술(IT) 제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살펴봤다.
업계에선 이 회장이 오는 26~2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MWC에서 고객사를 만나 6G 관련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반도체 사업과 관련해선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짓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부가 미루고 있는 보조금 지급 문제를 풀기 위해서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무죄를 받은 만큼 공개적인 행보를 늘려 삼성에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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