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된다"는 말이 있다. 유태인 속담이라고 하는데 주로 자기 말만 하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어른이란 쓸데없는 참견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존재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갑을 열어야 된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넉넉한 인심을 베풀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나이 들어가면서는 자꾸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지갑을 열어 돈을 써야 하는데, 과연 넉넉하게 쓸 정도의 돈을 번 어른이 얼마나 되겠는가. 일반적으로 나이든 사람들은 젊은이에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이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섭섭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들어봐", "너에게 충고한마디 하자면" , "나는 할 말은 하는 성격이야"라는 말로 서두를 시작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젊은이들은 귀를 닫는다. 속으로는 "어휴, 꼰대! 그래 당신 잘났어. 얼마든지 떠들어봐라. 나는 귀 닫을 테니"라는 반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나이 많은 어른이기에 잠자코 듣고는 있지만, 이미 불통을 지나 혐오의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나이 들수록 지갑을 여는 것과 함께 마음을 여는 것이 더 존중받는다. 젊은이들의 생각을 인정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도와주고, 힘들 때 옆에서 조용히 응원하는 어른이 진정한 어른이다. 아울러 돈과 인심은 먼저 쓰고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빛이 난다. 대가를 바라는 것은 인간관계를 거래관계로 변질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갑을 열어 돈을 잘 쓰려면 돈을 많이 벌어놨거나, 지속적인 소득이 나오는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두어야 한다. 내 지갑을 열어 돈을 쓸 형편이 안 된다면, 그냥 조용히 마음을 활짝 열고 들어주면 된다.
스스로 꼰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른이라고 생각되면 입을 닫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학생이 되면 최고이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거꾸로 젊은이에게 배우는 어른이 현명하다.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꼰대’의 특징 중 하나가 자기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감대 떨어지는 훈계, 어설픈 위로, 편협한 사고는 꼰대의 전형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배우는 자세를 가지면 자연스레 겸손해진다. 죽을 때가지 배워도 다 못 배우는 것이 세상이다. 어설피 아는 척하는 것보다 매일매일 배운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면 마음도 열리고 꼰대 소리도 듣지 않는다.
사람에게 두 개의 눈, 두 개의 귀, 하나의 입이 있는 것은 많이 보고 많이 듣되 적게 말하라는 것이다. 지갑을 열지 않아도 귀를 열어 경청하는 사람은 그래도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면, 상대방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보상이 된다. 경청은 인간관계의 시작이므로 의식적인 노력과 일상생활 속 연습을 통해 충분히 기를 수 있다. 당장 오늘 젊은이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귀를 열고 들어보자. 귀와 마음을 함께 여는 큰 어른이 되자.
관련된 신문의 칼럼(경향신문 2017.08.02) 하나를 소개하면 대리운전을 하는 젊은이에게 50대 한국 남성들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순서를 거친다고 한다. (1) 대리기사에게 열심히 산다는 칭찬, 혹은 걱정을 가볍게 건네지만, (2) 곧 손님 자신은 더 열심히 살았다는 자기 서사를 시작한다. (3) 그에 더해, 사실 젊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고 있으며, (4) 세상에 공짜 밥은 없다고, (5) 그러니까 대리기사 당신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고는, (6) 이런 이야기는 어디 가서 못 들으니 오히려 내가 당신에게 돈을 받아야겠다는 가벼운 유머와 개그를 던지고, (7) 내가 이런 이야기 해줘서 좋았지? 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나열한 7가지 각 항목을 순서대로 모두 하는 이들도 있고, 몇 가지는 건너뛰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신보다 젊은 타인에 대한 걱정, 질책, 당부와 함께 자신의 서사를 긴 시간 이어 나간다. 이들이 바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꼰대들 아니겠는가. 입은 닫고 지갑과 마음을 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구건서 심심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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