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수화의 거장 소산 박대성 화백이 해외 순회 전시를 마치고 금의환향했다. 1945년생으로 여든을 앞둔 박 화백은 독일과 카자흐스탄,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 땅을 차례로 밟으며 8번 전시회를 열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앙코르 전시회’는 2년에 걸친 대장정의 피날레다.
박 화백은 폭 7m, 높이 4m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을 자주 그린다. 크기부터 압도하는 작품의 힘에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은 단 8점의 그림만으로 메인 전시장을 내줬다. 한국 작가 최초의 초대전이었다. 한국화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뿜어내는 그림에 관람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결국 두 달이나 전시를 연장했다. 처음에는 전문가 중심으로 발길이 이어지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 관람객이 대거 몰렸다. 외국인들은 눈 내리는 불국사의 모습을 담은 ‘불국설경’ 앞에서 말을 잃었다. 수년간 눈이 내리지 않은 경주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그 길로 내려가 그린 작품이다.
박 화백은 해외 전시에서 직접 그림을 그려 보이며 자신을 알렸다. 그는 “그저 그림만 걸어 두고 관람객에게 보라고 한 과거 전시와 가장 달랐던 점이었다”고 했다. 세계의 관람객들은 한쪽 팔만으로 초대형 수묵화를 그리는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봤다. 그는 순회전 기간에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센터, 다트머스대 후드미술관 등을 돌며 한국화에 대해 강연하고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박 화백은 고난이 키워낸 집념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표현한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다섯 살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6·25 전쟁통에 왼팔까지 잃었다. “고놈 그림 하나는 참 잘 그린다”는 동네 노인들의 칭찬에 의지해 두문불출하며 그림에만 몰두했다.
‘그림 하나 잘 그린다’는 말은 초대형 작품의 원천이 됐다. 집에 걸기도 힘든 대형작을 그리면 개인 소유가 되기보다는 미술관이나 공공 건물에 걸리는 일이 많아진다. 그는 ‘먹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전시하고 있는 ‘삼릉비경’은 높이가 8m에 달한다. 전시장 천장 높이보다 커서 할 수 없이 작품의 일부분이 바닥에 코트 자락처럼 끌린다.
박 화백은 그만의 한국화 스타일을 창조했다. 풍경을 그릴 때도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강조했다. 마치 서양의 추상화를 그리듯 마음대로 붓을 놀렸다. ‘신라몽유도’ 속에 담긴 경주 대표 유적들에는 비례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유적이 한데 모여 있는 데다 큰 크기로 강조됐기 때문이다. 뒤편에 보이는 경주 남산(南山)은 실제 모습과 달리 산맥이 매우 단순하고 왜곡된 형태로 그려졌다. 그의 머릿속에서 창조된 새로운 시공간이다. ‘현율’ 연작에서는 과장법을 사용해 역동적인 화면을 완성하며 ‘산수화의 정형’에서 벗어났다.
서울 전시에서는 순회전을 펼치며 각국에서 그린 스케치도 함께 걸렸다. 그는 낙서와 같은 스케치를 1년이면 수천 장 그린다. ‘끄적끄적’ 일기처럼 그린다고 한다. 전시회장에서 박 화백은 이렇게 말했다. “산업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고 화려하게 변해갑니다. 하지만 나는 역으로 그 모든 것을 한 걸음 물러서서 조용히 관람하죠. 그런 관망의 과정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빈 곳을 채워갑니다.” 전시는 3월 24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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