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2월 14일 18:5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동주의 펀드 5곳이 연합해 삼성물산에 자사주 소각과 배당 증액을 요구하고 나섰다. 다음 달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 같은 안건을 올린 만큼 표 대결도 예고됐다.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는 삼성물산 성장 여력을 훼손할 만큼 과도한 수준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물산은 다음 달 15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씨티오브런던인베스트먼트를 비롯한 5개 기관투자가가 주주제안으로 올린 자사 소각과 현금배당 안건을 상정한다. 주주제안을 올린 곳은 씨티오브런던인베스트먼트와 안다자산운용,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등이다. 이들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1.46%다. 삼성물산에 주주친화책을 요구했던 영국 팰리서캐피탈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들은 삼성물산에 5000억원어치 자사주를 매입하고, 보통주와 우선주를 주당 각각 4500원, 4550원씩 배당하라고 요구했다. 삼성물산이 제안한 배당액에 비해 각각 76.5%, 75.0% 증액한 규모다. 삼성물산은 보통주 주당 2550원, 우선주 주당 2600원을 배당할 계획이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삼성물산을 대상으로 ‘울프팩(wolf pack·늑대 무리) 전략’을 본격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울프팩 전략은 행동주의 펀드 여러 곳이 뭉쳐서 한 기업을 공격하는 것을 뜻한다. 늑대가 사냥할 때 무리를 구성하듯 공시 의무가 없는 5% 미만 지분을 확보한 뒤 행동주의 투자자들을 규합해 공세에 나서는 ‘가성비’ 높은 공격법이다.
행동주의가 요구하는 주주환원 규모는 1조2364억원에 달했다. 삼성물산은 이 금액은 2023년과 올해 이 회사(별도기준)의 잉여현금흐름 추정액을 초과하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금이 빠져나가면 회사의 투자력이 급격히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회사는 이미 1조원어치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행동주의 펀드는 여기에 추가로 주주환원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 행동주의 펀드는 단기차익 실현을 최대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만큼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훼손하는 요구를 많이 한다. 이들이 삼성물산에 요구한 1조원어치 주주환원책은 결국 회사의 투자·고용 여력을 훼손할 수 있어서다.
이들의 공격이 기업의 성장과 생존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많다. 캐나다 지배구조 전문 연구기관인 IGOPP가 2015년 발간한 ‘행동주의 헤지펀드 연구: 경험적 증거’ 보고서를 보면 2009년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은 기업 115개 가운데 2014년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63개에 불과했다. 절반에 가까운 52개사는 부도·청산 절차를 밟거나 사모펀드(PEF) 등에 매각됐다. 보고서는 이들 기업이 헤지펀드 요구를 수용해 배당을 늘리고 핵심 자산을 매각하면서 성장 동력이 손상된 결과라고 분석한 바 있다.
김익환/김진성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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