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해운동(除四害運動)은 중국의 대약진운동 기간 실행된 중요한 정책 중 하나였습니다. 어느 날 마오쩌둥은 참새가 인민이 먹을 소중한 곡식을 먹는 것을 보고 '저 새는 해로운 새'라고 지적했습니다. 며칠 후 '전국농업발전강요'라는 총 40개의 정강이 포고되는데 여기의 27번째 항에 '제사해'가 포함됐습니다. 제사해는 말 그대로 참새, 모기, 파리, 들쥐 등 네 가지 해로운 동물을 제거하는 운동입니다.
아울러 중국사회과학원은 이 네 가지 동물이 인민에게 미치는 위험성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특히 마오쩌둥이 직접 지적한 참새는 매우 위험한 동물로 분류됐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전 인민이 참새를 잡는데 동원됐습니다.
많은 사람이 북이나 세숫대야를 시끄럽게 쳐 참새들이 내려앉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참새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이 행위를 계속했습니다. 제사해운동이 실시된 첫날 베이징 시민 300만명이 동원돼 약 8만마리의 참새를 사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산당은 인민들에게 참새 사냥을 할당했고 포상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1년 뒤에는 약 2억마리의 참새가 포획됐습니다. 참새 사냥은 성공적이었고, 공산당은 곡식을 먹는 참새가 사라졌으니 풍년이 올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당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1959년 중국에는 흉작이 찾아왔습니다. 1958년 2억t에 달했던 식량 생산량은 1959년에는 1억7000만t으로 줄었습니다. 1960년과 1961년의 수확량도 각각 1억4350만t, 1억4750만t에 불과했습니다. 수확 면적도 급격히 줄었습니다. 1958년 1억2200만ha였던 수확면적은 1959년 1억1600만 ha로 600만ha 줄었습니다. 2022년 한국의 벼 재배면적이 72만7000ha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입니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먼저 대약진운동을 거치며 농업 생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원인은 먹이사슬의 붕괴입니다. 제사해운동 후 참새가 사실상 멸종하며 먹이사슬이 무너졌습니다. 참새가 사라졌다는 것은 병충해 발생을 막을 곤충 포식자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중에서도 메뚜기 떼는 농업에 심각한 피해를 줬습니다. 당시 난징은 경우 메뚜기 떼에 의해 논밭의 60%가 손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 인민들은 공산당이 지정한 참새 포획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닭, 꿩, 오리 등의 날개 달린 동물들을 포획해 참새라고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생태계 붕괴는 더 심각해졌고 곡식뿐 아니라 가금류도 부족하게 돼 중국은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그 결과 중국 전역에선 3년간 4200만명이 아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사해운동의 부작용이 명확히 드러났지만, 마오쩌둥은 이 실수를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공산당 수뇌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참새 사냥을 밀어붙여 더 큰 피해를 불러왔습니다. 결국 중국은 소련에서 참새 20만마리를 '몰래' 수입해 와야 했다. 그리고 제사해 목록의 참새를 빈대로 조용히 교체한 후에야 무분별한 참새포획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대 교수, 메타버스금융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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