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를 입은 가수 강원래(54)씨가 지난 9일 영화관 입장을 거부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강 씨는 가족들과 함께 '건국전쟁'을 보기 위해 강변 CGV를 찾았으나 휠체어 출입이 어려워 상영관 앞에서 돌아 나와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직원에게 휠체어를 들어주면 안 되냐고 했더니 위험하다고 했다"며 "휠체어 타고 있는 제게 '잠깐이라도 일어설 수 있느냐', '벽 잡고 걸을 수 있느냐'고 묻는 직원의 질문이 불편했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에 대한 목소리가 지속해서 나왔으나 강 씨의 사연을 통해 현실엔 사각지대가 남았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번 기회에 장애인 접근권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강 씨가 처음은 아니다. 2019년 한 장애인이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며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에 방문했다가 이같은 일을 겪었다. 그는 이 사례와 관련해 인권위에 진정을 냈고, 인권위 측은 전체가 아닌 개별 상영관별 1% 이상씩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CGV 관계자는 16일 한경닷컴에 "인권위의 권고에 따라 직영 영화관 가운데 18곳의 시설에 장애인석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인권위에 제출했고, 2월 현재까지 15곳의 시설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이어 "장애인석은 대피할 때 신속히 이동할 수 있도록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마련해야 하는데 구조나 계단, 크기, 경사도 등 대규모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개선하는 중"이라며 "장애인분들이 보다 편안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CGV 측이 억울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강변 CGV는 1호점이라 예전 기준으로 지어진 건물일 것"이라며 "장애인석은 구조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아직 리뉴얼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씨에게 "일어설 수 있느냐"고 질문한 CGV 직원의 응대에 대해서 "가이드에 맞춰서 응대했을 것"이라며 "휠체어를 들어서 옮기다가 사고가 나면 극장 책임이다. 직원이 강원래 씨의 상황을 알지 못했을 수도 있고. 운영자 측에선 적절한 대응이라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애인 이동권 개선 활동을 하는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은 "한 일본 장애인분이 한국 영화를 보러 다니셔서 휠체어 자리가 어디 있나 알아봐 드리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너무 소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 펜데믹 이후 영화관 체인들도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K 콘텐츠가 붐인 가운데 한국 영화가 한국 문화의 중심에 서 있으니 영화관 측에서도 편의 시설을 확충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시행령을 지키는 수준보다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의미에서 움직여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홍 이사장은 "장애인 좌석이 있는지 여부는 해당 영화의 시간을 클릭하고 들어가서 좌석 지정을 할 때에야 알 수 있다. 장애인 좌석이 없는 회차인 경우 다시 초기 페이지로 넘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네 다섯번씩 같은 검색을 해야한다는 것은 부당하다. 단계를 조금 줄여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이어 "영화 제목 옆에 장애인석 유무와 장애인석이 있다면 앞인지 뒤인지 상영관 정보 옆에 기재해주면 좋겠다"며 "인프라를 당장 바꾸기 어렵다면 정보라도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한 극장 관계자는 "앱 UI를 개발 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면서도 "시행령의 경우는 시간도 걸릴 테고, 저희도 의견을 나누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관도 영리 목적의 민간 기업이라 현실적으로 한계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 기회를 늘리려면 시설을 확충해야 하는데 현실적인 고려 없이 법제화된다고 생각하면 막막한 상황이긴 하다"고 말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강원래 씨의 사연을 언급하며 "대단히 이상한 일"이라며 "장애인 극장 출입 관련 규정에 해석상 맹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시각 장애 피아니스트 출신 김예지 비상대책위원은 "장애가 있는 관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좌석에서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없는 상황을 늘 마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 영화관에서 시행령을 이행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휠체어 좌석을 갖춰놓은 상영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접근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곳이 많다"고 했다.
김 위원은 그러면서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 상영관별 관람석의 1% 그러니까 전체 좌석이 아닌 상영관별로 1% 이상을 휠체어 이용 관람객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영화관 내 장애인 접근성 향상을 위한 구조 변경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영화관들이 코로나 이후 OTT로 많은 관객이 넘어가서 어렵다고 한다. 이 또한 지원 방안을 만들겠다"며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법률 개정은 국회에서 가능하나 시행령 개정은 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하다. 한 위원장은 "제가 시행령 바꾸는 전문가 아닌가"라며 "명분 있고 합리적인 내용이라면 힘들고 오래 걸리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부와 함께 추진할 것을 약속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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