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찾은 경기 연천군 청산면 초성리. 인적이 드문 거리에 무너져 가는 빈집이 여럿 눈에 띄었다. 반나절 동안 군인을 제외한 젊은이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상권도 마땅치 않았다. 동네 슈퍼, 음식점, 철물점 정도였고 ‘임대 문의’가 붙은 건물이 적지 않았다.
청산면은 경기도의 기본소득 실험이 이뤄지는 곳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구상한 ‘농촌기본소득’을 자격을 갖춘 주민 전원에게 월 15만원씩 지역화폐로 지급한다. 인구 유입을 장려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2022년부터 5년 동안 지급하며, 올해가 3년 차다.
2021년 12월 말 기준 청산면 인구는 3895명에서 2022년 말 4217명으로 전년보다 322명 늘었으나 지난해 말엔 41명 감소한 4176명에 그쳤다. 현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나같이 “인구가 잠깐이나마 늘었다는 것도 체감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청산면에 거주하러 왔다가 서울로 다시 돌아간 30대 서모씨는 “연천군에 사람 좀 들어오게 하려고 시작했다지만 솔직히 망했다고 생각한다”며 직설적인 표현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초창기에 집 얻고 전입 신고해서 살지 않고 돈만 받았다가 쫓겨난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기본소득으로 지급되는 15만원은 엉뚱하게 물가 인상 효과만 낳았다. 서씨는 “동네 치킨집에서 치킨 사 먹는 가격이 1만5000원이었는데, 기본소득이 지급되면서 1만7000원으로 올랐다”며 “다른 지역에서 물건을 사온 뒤 여기서 더 비싸게 지역화폐를 받고 파는 업체들이 생겼다”고 했다.
청산면에서 태어나 40년 이상 거주 중인 자영업자 유모씨는 “인근 상가에서 5000원에 팔던 물건이 이제 7000원이 넘는다”며 “5년 동안 이익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다들 20% 정도 가격을 올린 것 같다”고 했다. 지역화폐 사용처로 지정되지 않은 동네 가게들은 ‘마트만 좋은 일 시켜준다’며 소외감을 감추지 않았다.
‘용돈급 기본소득’이라고 해도 예산에는 큰 부담이 된다. 청산면 농촌기본소득 예산은 경기도와 연천군이 각각 70%, 30% 부담하고 있다. 올해는 경기도비 48억400만원과 시·군비 20억5900만원 등 총 68억6300만원이 배정됐다. 이 사업에 큰 금액이 배정되면서 오히려 인프라 투자 등 꼭 필요한 사업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소비가 아니라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공립청산어린이집 원장 한모씨는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소비 외에 건설적인 곳에 돈이 가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냈다.
기본소득사업의 사후 평가와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경기도는 당초 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첫해 기본조사 후 2년마다 상세한 효과분석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효과분석을 위한 관련 용역비는 올해 5300만원만 배정했다. 첫해 기본조사 때 5억원이 소요된 것과 비교하면 너무 적다. 도 관계자는 “실제 중간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1억원 이상이 필요하다”며 “올해 추경(추가경정예산) 심사 때 더 받게 될지 기다려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경기도의 1차 추경 시기는 6월쯤으로 예상된다.
연천=오유림 기자 ou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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