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은 일상을 낯설게 해준다. 익숙한 사물이나 현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여주면서 개인과 사회가 깨어있도록 자극한다. 한국 개념미술의 주요 작가인 김홍석(상명대 무대미술학과 교수)도 같은 생각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존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게 미술의 역할이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2·3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홍석의 개인전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의 작품 33점으로 채워졌다. 예컨대 2관 입구에 있는 작품 ‘내 발밑의 무게’는 언뜻 보면 평범하고 가벼운 카펫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브론즈로 제작된 무거운 조각 작품이다. 벽에 붙어있는 돌덩이를 손목으로 받치는 듯한 작품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 역시 무게에 대한 감각을 뒤집는다. 암석처럼 보이는 돌이 사실은 레진으로 만든 가벼운 조각(소조) 작품이기 때문이다.
눈이 즐거워지는 재기발랄한 개념미술이라는 점에서 지난해 리움미술관에서 연 전시로 큰 인기를 끈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연상되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알맹이는 다르다. 카텔란이 현대미술을 조롱하며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 전략을 고수하는 데 비해 김홍석은 적극적으로 미술사적 요소들을 제시하며 설명에 나선다.
작가에 따르면 이번 전시의 핵심 주제는 ‘뒤엉킴’. 실재와 허구, 정상과 비정상, 세계 미술의 정통으로 여겨져 온 서양미술과 주변부에 있던 동양미술 등 여러 개념을 의도적으로 뒤섞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뒤집어보자는 것이다. 그는 “한국적인 현대미술이 무엇인지,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 끝에 피자와 카레, 김치, 소주를 먹는 내 모습 즉 뒤엉킴이 한국적인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런 뒤엉킴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 2관 2층에 있는 ‘사군자 페인팅’이다. 연꽃과 대나무 등 동양적 주제를 그렸지만 서양화 재료인 아크릴 물감과 캔버스에 서양화처럼 두껍게 붓질을 쌓아 올려 동양미술과 서양미술의 경계를 지웠다. 사군자 작품 제목을 ‘유니티’(통합), ‘텐션’(긴장) 같은 영어 단어로 지은 것도 마찬가지로 경계를 허물기 위한 장치다.
전시장에는 블루스 음악이 흘러나온다. 김 작가는 “현대미술이라고 해서 대단히 특별한 존재는 아닌데 어쩌다 보니 대중과 거리가 생겼다”며 “미술은 특별한 것이 아니고, 갤러리나 미술관도 쇼핑몰처럼 일상적이고 친숙한 공간으로 느껴지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배경음악을 틀었다”고 했다.
3관에 있는 ‘믿음의 우려’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눈에 띄는 작품이다. 운석 덩어리가 전시장 천장을 부수며 추락한 듯한 거대한 설치 작품이다. 돌 속에는 전형적인 별 모양(☆) 조형물이 두 개 박혀 있다. 국제갤러리는 “땅에 떨어진 운석은 별이었지만 지금은 돌에 불과하다는 사실, 암석 내부에는 인간이 만든 별 모양이 박혀있는 모순 등을 통해 여러 개념을 뒤엉키게 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냥 봐도 즐거운 작품이 많다. 악당 캐릭터 조커와 고양이를 뒤섞은 ‘실재 악당’이 대표적이다. 밑창에 시멘트 덩어리를 붙여 하이힐처럼 키를 높인 지압 슬리퍼, 솟구쳐 오른 채 고체가 된 분수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3월 3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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