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애(36)의 이름 앞에는 ‘지존(至尊)’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지극히 높은 위치라는 뜻으로, 과거 임금을 높여 부른 말이다. 골프에서 지극히 높은 위치에 올랐고, 지금도 끝없이 올라가고 있기에 신지애에게 ‘지존’이라는 별명은 허명이 아니다.
그는 한국 선수 최초로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개인 통산 65승(아마추어 1승 포함)을 거뒀다. 한국과 미국에서 상금왕을 따내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신지애는 20년 가까이 최고의 자리를 지켜가는 데 대해 “특별한 것은 없다. 이제까지 축적해온 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신지애를 ‘지존’의 자리로 끌어올린 것은 지독한 노력이다. 지금도 코스에 나가면 10시간 이상 연습에 집중한다. 매년 호주를 전지훈련 장소로 선택하는 것 역시 “해가 길어서 원 없이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호주에서 훈련할 때는 저녁을 먹다가도 뭔가 아쉬움이 남으면 오후 7시30분에 9홀을 돌기도 한다”며 “이것저것 연구하고 시도하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고 말했다.
골프 관련 데이터와 분석이 넘쳐나는 시대, 하지만 신지애는 여전히 자신의 ‘감(感)’을 믿는 선수다. 엄청난 양의 연습을 하는 것 역시 ‘감’을 확실하게 잡기 위해서다. 그는 “눈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손으로 느껴지는 감각을 일치시키는 데 집중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기에 데이터에만 집중하는 요즘 트렌드가 아쉽다고 했다. 그는 36세의 나이에도 어린 선수들과 경쟁하고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비결에 대해 “저는 ‘게임을 하는 골프’를 치기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살랑거리는 바람, 작은 모래알 하나에도 결과가 달라지는 게 골프이기에 프로선수는 어떤 상황에서든 샷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게임을 하는 골프’”라는 설명이다. “골프는 이미지가 중요해요. 그런데 다들 공을 치고 나서 공이 아니라 모니터를 보더군요. 내가 친 결과를 이미지가 아니라 숫자로 입력하면 분석은 쉽지만 감각적인 피드백을 내기는 어려워요. 프로선수들이 깨끗하게 치지 못해서 연습하는 게 아니잖아요?”
최고의 자리에서 느끼는 압박감을 극복하는 것 역시 “연습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긴장될수록 그냥 몸에 맡긴다”고 말했다. 그간 연습으로 축적한 것을 믿고 몸이 알아서 움직이도록 둔다는 설명이다.
올림픽 출전권은 6월 마지막 주 세계랭킹으로 결정된다. 나라별로 랭킹 상위 2명이 출전하는데 세계 15위 이내 선수가 많은 나라는 최대 4명까지 출전할 수 있다. 현재 신지애의 세계랭킹은 16위로, 올 상반기에는 톱랭커가 많이 나오는 대회를 중심으로 출전해 랭킹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아직 신지애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많이 남아 있다. 지난해 상금랭킹 2위로 아쉽게 일본 상금왕을 놓쳐 아직 미완으로 남은 ‘한·미·일 상금왕’ 타이틀, 일본투어 영구 시드도 많은 팬이 기대하는 기록이다. 신지애는 “올해는 파리올림픽에 집중하고 이후에 하나씩 노려보겠다”고 말했다. 당분간 은퇴는 전혀 계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날 인터뷰를 마치고 신지애는 골프공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가 그린 것은 태극기와 ‘8824’. “1988년생 용띠인 제가 청룡의 해인 2024년을 맞았다는 뜻에서 선택한 숫자예요. 용띠답게 올 한 해 더 멋지게 날아올라 보겠습니다.” 신지애가 만들어가는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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