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궁금해졌다. 홍콩H지수 ELS로 손실을 본 이들은 피해자일까, 아니면 피해 호소자일까. 일단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사례를 보면 불완전 판매에 따른 피해자들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은행 창구 직원이 팔순 노인에게 원금 손실 가능성을 숨긴 채 상품 가입을 권하거나 암보험금 수령자에게까지 상품 가입을 유도했다고 한다.
다른 시각도 있다. (국민정서법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이번 기회에 투자자 책임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따지고 보면 ELS는 일종의 ‘베팅형 상품’이다. 투자한 상품의 기초지수(또는 종목)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통상 정기예금의 두 배 이상의 금리를 받는다. 2006년 은행들이 판매를 시작한 이후 ELS가 20년 가까이 대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이유다.
ELS 투자로 재미를 본 뒤 다시 투자에 나선 이들이 90%를 넘어서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만큼 이 상품에 익숙한 투자자가 많다는 얘기다.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주장도 먹혀들기엔 녹록지 않은 구조다. 은행들이 2021년부터 녹취를 강화하고 필수 설명 등을 인공지능(AI) 시스템을 통해 읽어주고 있어서다.
세상만사를 관통하는 정답은 없다. 분명한 것은 금융당국이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자율 배상 압박에만 열을 올리는 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차라리 고위험 상품을 팔 수 있는 은행별 거점 점포를 지정하거나 상품 판매 총량을 정해 과당 경쟁과 불완전 판매를 최소화하는 게 낫다. 원금 손실률이 20~30%를 넘지 않는 저·중위험 상품만 은행에서 팔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피해자’와 ‘피해 호소자’를 모두 줄일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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