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낸 뒤 병원을 떠나기로 한 시점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환자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의료대란'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와 각 병원에서는 시급하게 비상 진료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대로 집단사직이 이어질 경우 환자들의 피해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대비하고 신속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9일 의사들이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예고한 데 대해 "집단행동 시 공공의료 기관의 비상 진료체계를 가동하고, 집단행동 기간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총리는 "정부는 전국 409개 응급의료기관의 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해 비상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이라며 "응급·중증 수술을 최우선으로 대응하고, 필수 의료 과목 중심으로 진료가 이뤄지도록 체계를 갖추며, 상황이 악화하면 공보의와 군의관을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선 병원의 대혼란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18일 한 암환자와 보호자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에 "일요일인데 갑자기 교수님이 회진을 와서 깜짝 놀랐다. 병원이 파업하게 됐으니 퇴원하라고 안내하더라"라면서 "아직 검사 결과가 안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파업하면 치료는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또 다른 환자는 "저도 19일 수술 예정이라 15일부터 입원해서 피 뽑고 엑스레이 찍고 각종 수술 전 검사하며 준비해왔는데 갑자기 조금 전에서야 수술 못할 거 같다고 퇴원하라는 통보받았다"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암 등 중병으로 인해 수술을 앞둔 환자들의 불안감을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환자 보호자는 "19일 아산병원서 수술 예정이었는데 수술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고 보건복지부 민원센터에 신고했다"고 공유했다.
그는 "담당자가 일단 빅5가 아닌 다른 병원 외래 잡아서 다시 일정을 잡으라고 권유했다"면서 "신고가 들어오면 해당 병원에 내용 파악하고 행정처분까지 고려한다고는 돼 있지만 현재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다"고 한숨 쉬었다.
앞서 ‘빅5’ 병원 전공의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 이후에는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 빅5 병원은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을 말한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등 일부 진료과목 전공의들은 이보다 하루 앞선 19일 사직서 제출과 함께 근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세브란스 소아청소년과의 한 전공의는 공개적으로 사직의 뜻을 표하며 "19일 소아청소년과 1∼3년 차의 사직서를 일괄적으로 전달하고, 오전 7시부터 파업에 들어간다"고 알렸다.
일부 진료과는 이미 입원과 수술 스케줄을 연기하고 있어 환자들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온라인상에서 ‘사직 전 전공의 행동지침’이라는 내용이 확산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한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글을 올린 세브란스병원 근무자는 "의사들 대단들 하다. 기업자료 지우고 도망가기"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작성자는 의사 커뮤니티 앱인 '메디스태프'에 올라온 공지도 첨부했는데 '[중요]병원 나오는 전공의들 필독!!'이라고 적힌 제목 아래 "인계장 바탕화면, 의국 공용 폴더에서 지우고 나와라. 세트오더(필수처방약을 처방하기 쉽게 묶어놓은 세트)도 다 이상하게 바꿔 버리고 나와라. 삭제 시 복구할 수 있는 병원도 있다고 하니까 제멋대로 바꾸는 게 가장 좋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를 두고 의사들은 "(남은) 인력이 전공의 ID로 처방 오더를 내리면 책임을 전공의가 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세트오더는 개인이 자기 일할 때 편하기 위해 정리해둔 것이라 지운다고 문제 되지 않는다"는 주장과 "엄연히 병원에 귀속된 자료인데 국민에게 피해를 주기로 작정한 것 아니냐"는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한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블라인드에 "간호사에게 인턴의 업무를 시키고 있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면서 "병원에 중환자들 너무 많은데 다른 병원에 전원시킨 것도 아니고 내버려 두고 나간다면 죽이는 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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