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자본증권(영구채) 논란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6년 만에 "영구채는 회계상 자본이다"는 결론을 내린 결과다. 영구채가 '부채를 자본으로 탈바꿈한 분식회계'라는 오명을 벗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구채를 발행한 기업들도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IASB "영구채는 부채 아니라 자본"
20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국제회계기준(IFRS)을 제·개정하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영구채를 자본으로 분류하는 방침을 유지하기로 했다. 최근 이같은 내용을 담은 공개초안을 발표하고 한국을 비롯한 IFRS 회원국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영구채는 기업이 외부에서 돈을 빌린 뒤 그에 대한 이자만 '영구히' 내면 되는 채권이다. 통상 만기가 아예 없거나,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길고 무한정 만기를 연장할 수 있다. 기업이 특별한 조건을 붙이지 않은 한엔 기업 청산을 할 때에야 채무 지급 의무가 발생한다. 회사채와 달리 회계상 부채가 아니라 자본으로 인정되는 이유다.
영구채 발행금액만큼 자본이 늘어나게 된다. 부채비율을 비롯한 재무구조 지표를 개선하는 수단으로 통했다. 영구채는 형식상 채권인 만큼 발행 후에도 주주가치가 희석되지 않아 유상증자 대안으로도 쓰여왔다.
'사실상 5년물' 논란 있었지만…"공시로 보완"
자본시장에서는 영구채를 놓고 분식회계 논란이 이어졌다. 한국 기업 거의 대부분은 영구채 발행 과정에서 콜옵션(조기상환권)을 붙여 발행했다. 영구채를 발행한 기업은 5년 뒤 콜옵션을 행사해 상환하는 것이 관례화됐다. 5년 만기 회사채처럼 기업은 영구채를 발행 5년 만에 상환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지녔다. 그만큼 영구채가 회사채 성격에 가깝다는 지적이 많았다. 2022년에 흥국생명이 국내 금융사로는 13년 만에 처음으로 외화 영구채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면서 파장을 겪은 바도 있다. 콜옵션을 행사해야 하는 그동안의 관례를 깬 데 대해 당국과 업계가 우려를 표하자 흥국생명은 당시 '울며 겨자 먹기'로 콜옵션을 행사한 바 있다. 영구채가 상환해야 하는 의무·책임이 있는 부채라는 인식을 뒷받침한 사례가 됐다.
금융감독원도 2019년 IASB에 ‘영구채를 회계상 자본이 아닌 부채로 봐야한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IASB는 금감원을 비롯한 각국 감독기구 등의 의견을 두루 고려해 자본으로 봐야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IASB는 콜옵션이 붙는 영구채에 대해서도 같은 방침으로 가닥을 잡았다. 회사가 5년뒤엔 금리가 확 뛰는 스텝업 조항을 포함해 만기가 없는 영구채를 발행했고, 5년 뒤 콜옵션 행사를 확신하더라도 자본으로 분류하라는 얘기다.
IASB는 대신 상품, 명목금액, 최초 콜옵션 행사가능일, 재설정금리 계약조건 등 영구채 관련 내용을 기업이 상세히 공시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영구채를 회계상 자본으로 계속 인정하는 대신, 공시를 통해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가 기업의 건전성을 오인할 소지를 줄인다는 취지다.
회계업계에선 이로 인해 기업들의 공시 부담이 크게 커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회계기준원 관계자는 "기존 영구채를 발행한 기업들 선례를 보면 공시 요구사항이 아니라도 대부분 공시를 통해 영구채 관련 내용을 밝히고 있다"며 "IASB의 방침으로 기업들의 공시 부담이 확 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업들은 한숨 돌렸다는 평가다. 영구채 분류가 부채로 전환될 경우 영구채를 발행해 거액을 조달한 기업들의 재무제표상 부채비율이 확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회계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기업들은 수천억원 규모 영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작년 6월 SK텔레콤은 4000억원 규모 영구채를, 신세계프라퍼티는 3000억원 규모 영구채를 발행했다. 같은해 9월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영구채 20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아시아나항공은 30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2020년 11월 발행한 영구 전환사채(CB)를 전액 상환하고, 이자를 낮춰 새로 영구 CB를 발행한 규모다. 이 영구채는 전액 대한항공이 매입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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