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요즘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AI)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이다. 얼핏 보면 ‘팹리스 강국’인 미국 기업일 것 같지만 모두 중국 태생이다. 중국엔 이런 팹리스가 1000개 넘게 있다. 중국 팹리스 업체들의 매출을 더하면 100조원(2022년)을 가뿐히 넘는다. 세계 팹리스 시장의 ‘수도’는 여전히 미국이다. 퀄컴, 브로드컴, 엔비디아, AMD 등 세계 최고 설계업체들이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의 빠른 추격 속도를 감안할 때 어느 순간 뒤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팹리스 기업들을 키운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이다. 미국이 반도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중 제재를 강화한 게 중국 업체들을 팹리스에 ‘올인’하게 만들어서다. 반도체 미세 공정의 핵심인 ASML의 극자외선(EUV) 장비 반입을 금지한 게 대표적이다. 이 장비가 없으면 최신 기술의 반도체를 제조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중국의 메모리, 파운드리 사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여기에 해외 반도체 수입도 막히자 중국은 자체 설계로 눈을 돌렸다.
팹리스는 반도체 설계·개발만 하는 회사다. 생산은 팹을 보유한 파운드리 기업에 맡기면 된다. 제조 공장을 갖출 필요가 없는 만큼 비용 부담이 적다. 복잡한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는 전문 인력만 보유하면 된다. 중국에는 지난 20~30년간 미국 등지에서 반도체를 공부한 고급 인력이 수두룩하다.
생성형 AI 등장으로 팹리스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대용량 데이터를 빨리 처리하는 게 AI 서비스의 핵심이 되다 보니 성능 좋은 그래픽처리장치(GPU), 신경망처리장치(NPU) 수요가 폭증하고 있어서다. 업계에선 조만간 ‘반도체 설계 인력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자동차,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자체 반도체 설계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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