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인텔은 오랜 기간 메모리 반도체 납품으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온 터.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인텔이 최첨단 인공지능(AI) 칩 파운드리 사업에 본격 뛰어들면서 삼성전자와 ‘직접적인 경쟁 관계’가 됐기 때문”이라며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둘러싼 TSMC, 삼성, 인텔 간 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은 이날 1.8㎚ 공정 고객사를 4곳 확보했다고 공개했다. 이 중에는 대규모 선주문을 넣은 회사도 있다고 했다. 또 2027년에는 ‘꿈의 기술’로 불리는 1.4㎚ 공정(인텔 14A)에서 칩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인텔의 본격 진출로 5㎚ 이하 최첨단 파운드리 시장은 TSMC와 삼성전자의 ‘1강 1중’에서 ‘1강 2중’ 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은 TSMC가 파운드리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지만, 인텔과 삼성전자의 저력을 감안하면 중장기적으로 ‘3강’ 체제로 재편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 31년 1위’인 삼성은 반도체 제조에선 세계 최고 실력을 갖췄고, ‘중앙처리장치(CPU) 최강자’ 인텔은 전체 반도체 분야를 통틀어 1위 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반도체를 설계만 할 뿐 생산은 공장설비를 갖춘 곳에 맡겨야 한다. 그러니 파운드리 산업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3년 1044억달러(약 139조원)이던 세계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2026년 1538억달러(약 205조원)로 불어날 전망이다.
5㎚ 이하 최첨단 공정 시장이 계속 커지는 것도 인텔의 파운드리 진출 배경으로 거론된다. 현재 5㎚ 이하 공정을 할 수 있는 곳은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최첨단 공정을 하려면 한 대 4000억원에 이르는 ASML의 노광장비(빛으로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장비)가 필요한데, 이렇게 목돈을 쏟아부을 업체는 많지 않다. 인텔은 자금 동원력이 충분한 데다 CPU 제조를 통해 수준급의 최첨단 공정 기술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텔이 미국 기업이란 점도 부담이다. 미국 정부의 지원은 물론 미국에 본사를 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텔이 공개한 4개 대형 고객사 대부분은 퀄컴 등 미국 기업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업체 고위 관계자는 “결국 삼성이 기댈 것은 기술뿐”이라며 “파운드리 실력을 끌어올려 경쟁사보다 싼 가격에 높은 품질의 제품을 안겨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너제이=황정수 기자/최진석 특파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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