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가용 인원 부족하니 경증 환자의 입원은 자제해달라.”
서울 세브란스병원이 21일 서울소방에 이 같은 내용의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세브란스병원은 서울 ‘빅5’ 병원 가운데 가장 이른 지난 19일부터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내고 의료 현장을 떠났다. 전공의 집단행동 참여율이 빅5 평균을 웃돌면서 의료 공백이 가장 먼저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응급실과 수술할 병원을 찾지 못해 환자들은 불안해하고 있고 진료와 수술이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사례가 급증하는 추세다. 소방당국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119구급차의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께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서모씨(45)는 “새벽에 갑자기 배가 아파 응급실을 찾았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록 진료를 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최근 암 수술을 받은 김모씨는 병원으로부터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추천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김씨는 “같은 층 병동 환자들은 수술이 취소된 경우가 많다”며 “파업 전보다 병실이 절반 이상 비었다”고 전했다.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경기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응급실 뺑뺑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경기소방 소속 119대원은 고양의 한 대형병원으로 응급환자를 이송하려다가 인천으로 구급차 방향을 돌렸다. 이 병원이 “응급실이 가득 차 환자를 더 받을 수 없다”고 답해서다. 사고 발생 지점과 병원은 차로 20~30분 거리지만, 구급차는 어쩔 수 없이 관할을 넘어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병원으로 이동했다. 소방 관계자는 “진료 거부 여파로 의료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현장에선 벌써부터 ‘갑자기 큰 사고라도 나면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을 벌인 2020년 8월 부산에서는 약물에 중독된 40대 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응급실을 찾아 3시간가량 돌았다. 구급차는 결국 울산으로 넘어갔지만 환자는 치료 중 숨졌다. 당시 일대 대부분 병원은 장비 부재, 진료과 부재, 의료진 부재 등을 이유로 환자 수용을 거부했다.
의료 공백이 현실화하자 이날 한 시민단체는 경찰에 의사들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대한의사협회, 전공의 등에 대해 진료 거부를 주도하고 참여했다는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조철오/안정훈/정희원 기자 che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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