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해소 방안의 하나로 주주환원 정책 강화를 추진 중인 가운데 여전히 국내 주요 상장사들은 배당에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782곳(12월 결산법인 기준, 외국주권법인 등 제외) 중 최근 3개년 회계연도(2020~2022년) 연속으로 배당을 실시하지 않은 기업은 190개사(24.2%)인 것으로 조사됐다. 코스피 기업 4곳 중 1곳은 최근 3년간 배당을 안했다는 얘기다.
이중 최근 3년간 당기순이익이 모두 흑자를 냈음에도 배당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곳도 42개사나 됐다. 특히 보험사나 증권사들이 다수를 이뤘다. 이들은 대부분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기업들이다. 돈을 버는 데도 PBR이 너무 낮다는 것은 부동산 자산만 많거나 주주에게 배당하지 않고 돈을 쌓아두는 경우다.
실제 3개년 연속 배당을 하지 않은 기업 중 PBR이 유독 낮은 곳은 흥국화재, 한화손해보험, 상상인증권이 꼽힌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흥국화재는 지난해 실적 기준 PBR이 0.29배에 불과하다. 흥국화재는 2020년 227억원, 2021년 620억원, 2022년 147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흥국화재의 3년간 주가상승률은 8.7%에 불과했다.
한화손해보험은 PBR이 이보다 더 낮은 0.20배 수준이다. 한화손해보험은 이 기간 각각 884억원, 1559억원, 302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상상인증권 역시 같은 기간 40억원, 62억원, 3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지만 3년간 배당이 전혀 없었다. 상상인증권은 이 기간 주가가 41.7%나 떨어졌다.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가 지난해 상반기 실적을 기준으로 배당 지급 여력과 실제 배당 지급 수준을 비교한 결과 이들 기업은 '과소배당기업'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부채비율, 미처분이익잉여금, 당좌자산 등 배당 여력이 충분함에도 배당을 하지 않거나 과소 배당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해외와 비교하면 국내 기업들의 '짠물배당'은 더욱 두드러진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배당 성향은 20.1%로 조사됐다. 미국(40.5%) 영국(45.7%) 독일(40.8%) 프랑스(39.3%) 일본(36.5%) 등 주요 선진국보다 낮다. 대만(52.5%)은 물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35.0%)보다도 떨어진다. 국제신용평가사 S&P글로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국내 상장 기업들은 총배당금이 1.4배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는 중국(2.4배)과 인도(1.8배)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이 같은 경향은 '고배당' 기업 투자를 선호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4년 41.2%로 정점을 찍었던 국내 증시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26.1%까지 떨어졌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4월(26%)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배당제도 개선에서 중요한 것은 회사의 경영진과 주주들이 배당에 대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먼저 마련해 주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상법상의 결산배당과 중간배당, 자본시장법상의 분기배당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는 배당확대를 주주환원 정책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실제 기획재정부와 한국거래소는 오는 26일 공개를 앞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핵심 방안 중 하나로 기업 배당 세액공제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당 증가분의 일정 비율을 법인세에서 감면해 적극적인 배당을 이끌어내겠다는 계획이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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