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건 쿠팡서 사요"…직격탄 맞은 대형마트 볕들 날 올까 [노유정의 의식주]

입력 2024-02-24 08:00   수정 2024-02-24 17:43



유통주가 모처럼 증시에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앞두고 저PBR주(주가순자산비율)가 수혜주로 거론되고 있고, 대형마트 규제 완화 호재도 겹쳤습니다. 하지만 유통주가 빛 볼려면 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많습니다.

잊혀지는 대형마트
유통업계 대장주인 이마트와 롯데쇼핑이 최근 지난해 연간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이중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총매출은 각각 전년 대비 2.6%, 2.3% 줄었습니다. 그만큼 물건 못 팔았다는 겁니다.



이마트는 1993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손실(726억원)을 기록해 충격을 줬습니다. 자회사 신세계건설이 부동산 시장 불황 여파로 718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탓이 컸습니다. 그러나 본업을 잘한 것도 아닙니다. 마트와 트레이더스, 노브랜드 등만 포함된 이마트 별도 영업이익도 1880억원으로 전년(2589억원) 대비 27.4% 줄었으니까요.

대형마트의 부진은 유통업종 중에서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유통업계 매출 중 대형마트 비중은 12.7%로 전년(13.4%)보다 쪼그라들었습니다. 백화점(17.4%)는 물론 편의점(16.7%)보다도 작습니다. 지난해 대형마트의 매출 증가율은 0.5%로 오프라인 유통 전체 꼴찌입니다.

반면 쿠팡 등이 포함된 e커머스 매출 비중은 지난해 50.5%로, 연간 기준 처음 절반을 넘었습니다. 전년(49.2%)보다 1.3%포인트 늘었는데, 대형마트 소비자를 상당수 뺏어왔다는 추정이 가능하죠.



이런 분위기는 주가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이마트 주가는 23일 종가 기준 7만5200원으로 2018년 고점(장중 32만3500원) 대비 4분의 1토막이 났습니다. 롯데쇼핑은 2014년 31만원대였던 주가를 10년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내 대형마트를 보유한 롯데와 신세계가 쿠팡의 습격을 눈뜨고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각각 롯데온과 쓱닷컴 등 e커머스를 강화하고 새벽배송도 시작했지요.

이들이 쿠팡과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내세운 자원이 마트였습니다. 배송을 하려면 물류센터가 있어야 하는데, 이 물류센터 기능을 전국 곳곳에 위치한 대형마트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대형 점포인 마트에는 상품들을 쌓아놓을 수 있는 수납 공간도 있고, 유통망도 오래 전부터 구축돼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대형마트 본업의 성장은 그룹의 우선순위에서 밀렸습니다. 물건 분류와 포장, 배송까지 처리하는 온라인 배송은 비용이 엄청나게 듭니다. 롯데온과 쓱닷컴도 아직 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자금이 필요해진 이들이 선택한 것은 대형마트 폐점이었습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는 2020년 이후로 점포 수를 일제히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마트는 창고형 매장인 트레이더스를 빼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매장을 15개 없앴습니다.



“본업 경쟁력 강화하겠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지난해 9월 취임한 한채양 이마트 대표는 본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내걸고 올해 신규 점포 부지를 추가로 확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롯데쇼핑도 올해 마트 부문에 964억원을 투자해 매장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온라인 쇼핑이 이미 대세가 됐는데 오프라인 점포를 늘리는 이유가 뭘까요? 온라인과의 차별도 있겠지만, 바잉파워 즉 구매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제조업체나 유통 도매업체들에게서 상품을 한 번에 많이 사고,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기업들이 더 저렴한 가격에 좋은 제품들을 받아올 수 있겠죠.

유통 대기업들은 이 바잉파워를 그룹 차원에서 키우고 있습니다. 이마트는 최근 이마트와 슈퍼 이마트에브리데이, 편의점 이마트24의 업무를 총괄하는 통합추진사무국을 신설했습니다. 마트와 슈퍼, 편의점용 상품들을 한 번에 떼다 팔겠다는 겁니다.

통합소싱 작업을 먼저 시작한 롯데는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롯데쇼핑은 2022년부터 롯데마트와 슈퍼를 통합소싱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지난해 롯데마트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0.4% 급증했습니다. 그러나 통합은 아직 진행중입니다. 실적이 더 개선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매출 기준 전 세계 1위 기업인 월마트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월마트는 향후 5년간 점포 150개를 새로 열거나, 기존 매장을 대형 센터로 리뉴얼하겠다고 최근 발표했습니다. 이중 대다수는 신규 매장입니다. 아마존 등 e커머스와의 경쟁이 심화하고 있으나 오프라인 쇼핑을 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고, 또 마트 점포들을 물류기지로 쓸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대형마트가 온라인 쇼핑과 무엇으로 경쟁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 동앗줄이 있습니다. 지난해 대형마트에서 유일하게 매출이 증가한 분야, 식품입니다. 신선식품은 눈으로 직접 보고 산다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e커머스들도 식품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몇 안 되는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밀어줘도 못 오르는 유통주
최근 정부가 대형마트 규제를 전격 완화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우선 대형마트가 한 달에 두 번 시행해야 하는 의무휴업일을 공휴일이 아닌 날로 지정할 수 있도록 허가할 예정입니다. 또 마트 점포는 자정부터 아침 10시까지는 문을 열지 못하지만, 이때 점포 기반 새벽배송은 허용해주기로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유통주에 큰 호재입니다. 주말에 사람들이 작정하고 장을 보러가는 날이 한 달에 이틀 늘어나는 셈이니까요. 의무휴업일 평일 변경 시 증권사 추산 이마트는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약 700억원, 롯데쇼핑은 약 400억원 증가할 전망입니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한다며 예고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수혜주로 저PBR주가 거론되고 있지요. 유통주는 대표적인 저PBR주입니다. 점포가 많은 만큼 부동산가치가 높습니다. 이마트의 PBR은 0.18배, 롯데쇼핑은 0.23배입니다. 전체 순자산의 5분의 1 수준만 주가에 반영된 거지요.

외국에서는 조금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최근 미국 대표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가 매각될 뻔하다 무산됐습니다. 당시 인수 의향을 밝힌 투자사 연합은 메이시스 주가에 21% 프리미엄을 붙여 지분을 인수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이 연합에 아크하우스라는 글로벌 부동산 투자사가 있었던 거죠.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들이 메이시스를 인수하면 미국 전역의 메이시스 부지를 팔아치워 수익을 얻은 후 메이시스를 재매각할 것이라는 잔인한 전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국내 유통주들은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PBR주든 정부가 미뤄주든, 결국 핵심은 이 기업의 미래가 밝은지 여부지요. 오프라인 점포들은 쿠팡과 마켓컬리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집 밖으로 나와 쇼핑을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가능한 일일까 싶지만, MZ들의 성지가 된 여의도 더현대 서울의 사례도 있으니까요. 유통주에 볕들 날이 과연 올지 지켜보시죠.


기획·진행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촬영 박정호·박지혜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박지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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