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의 블랙핑크 나올까"…YG, 'K아트'에 꽂힌 이유가

입력 2024-02-25 18:24   수정 2024-02-26 00:18


“당신을 ‘취향의 집(House of Taste)’으로 초대합니다.”

지난 22일 서울 한남동 뉴스프링프로젝트 갤러리. 전날 내린 눈이 소복이 쌓인 이태원의 언덕을 조금 오르자 ‘House of Taste’라는 붉은 팻말이 등장했다. YG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YG플러스가 기획한 첫 미술 전시회의 오프닝. 문을 열고 들어서자 8명의 작가가 마치 자신의 작업실에 초대하듯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이 전시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기존 갤러리 전시들과 달랐다. 하얀색 벽이나 넓은 공간에 작업을 걸거나 놓아두는 방식이 아니라 공간 곳곳을 마치 ‘누군가의 집’처럼 꾸몄다는 점. ‘그룹전’이지만 도예, 가구 디자인, 회화, 공예를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의 1980~1990년대생 스타 작가들을 한데 모아 서로 경계를 허물고 협업하게 했다는 점이다.

YG플러스의 아트레이블 진출, 왜?
YG플러스는 그동안 음악 관련 지식재산권(IP) 사업에 주력해온 회사다. YG 소속 음악가들, 음원, 음반의 캐릭터 사업이나 음악 플랫폼 운영 대행, 음원 투자 유통 등을 맡았다. 1996년 설립돼 2013년 YG엔터의 자회사로 공식 편입됐다.

이날 공식 출범한 ‘아트 레이블’의 이름은 피시스(PEECES). K팝의 글로벌 수출 시스템을 구축한 노하우를 미술 시장에 접목하겠다는 취지다.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순수 예술 작가의 매니지먼트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 미술 시장은 전통적으로 주요 갤러리가 전속 작가를 두고 전시회를 열거나 아트페어에 작품을 출품해 컬렉터들과 연결하는 역할을 해왔다. YG는 순수 예술 영역과 대중 예술 영역의 접점을 찾아 미술 시장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국경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예술’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기존 갤러리들도 YG플러스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다.

이효정 YG플러스 이사는 “요즘 작가는 자신의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작품에) 열광하는 팬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어 한다”며 “IP 상품화에 대한 노하우와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의 경험을 살려 미술 분야에도 접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1980~1990년대생 작가들 주축
그룹전 ‘House of Taste’에 걸린 작품은 순수 회화에서 인정받는 화가들의 신작과 공예, 도예, 가구 디자인 등에서 주목받는 조형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국내 대표 연예기획사인 YG가 1년여 전부터 전시를 기획한다고 했을 때 미술계 반응은 싸늘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새로운 흐름에 대한 호기심에 YG플러스의 섭외 제안을 선뜻 수락했다. 전시를 앞두고 마치 음반 발매를 앞둔 예고 영상처럼 전시를 알리고, 작가들이 홈파티를 준비하는 듯한 모습의 영상을 제작한 점도 신선했다고.

전시 참여 작가는 김미영, 문승지, 보킴, 백하나, 오재훈, 이악크래프트(전현지), 정수영, 채지민 등 8인. 1980년대~1990년대생 작가로 구성된 이들 중 일부는 이미 명품이나 패션 브랜드와 활발하게 협업한 경험이 있다. 대부분은 인스타그램 등 SNS로 다수의 팔로어를 보유해 이미 ‘팬덤’이 있는 작가다.

세라믹 스튜디오 이악크래프트와 정수영 작가는 도예와 회화를 접목한 테이블웨어(식탁 용품)를 선보였다. 주로 일상적인 물건을 오브제 삼아 캔버스에 담는 정수영 작가의 작품을 이악크래프트의 도자기에 입혔다. 채지민 작가는 “기존 갤러리 전시와 달리 YG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을 과감하게 잘 보여준 기획인 것 같다”며 “전시 공간을 일반 갤러리와 달리 구성하고, 또래의 다른 작가들과 적극 소통할 수 있었던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5일까지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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