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이름 덕에 고대 로마 특유의 세금 제도는 일찍부터 관심의 대상이 됐다. 현대 로마사 연구의 기틀을 다진 테오도르 몸젠 이후 수많은 학자가 이 세금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노력해왔다.
하지만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불분명하다. 제도 도입 이후 지속해서 세금이 부과된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모두 자료가 부실한 탓이다.
분명한 것은 ‘노총각세가 도입됐었다’라는 단 한 가지 사실이다.
기원전 403년 호구감찰관이었던 푸리우스 카밀루스는 전격적으로 노총각세를 도입하며 사실상 로마 시민들의 결혼을 의무화했다. 나이가 들어서까지도 결혼하지 않은 남성에게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제도의 도입 취지는 ‘인용의 인용’ 형식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제도가 시행된 지 한참 뒤인 기원후 1세기 로마의 역사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는 “로마 시민은 아이를 양육함으로써 부모에 대한 감사의 빚을 갚는 것”이라며 “남편과 아버지로서 명예롭지 않은 이들은 국가의 금고에 돈을 지급하는 것으로서 부모로부터 받은 빚을 갚아야 했다”며 제도 도입의 명분을 설명했다.
실질적으로 노총각세에 해당하는 세금이 부과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기원전 18년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전제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회개혁의 목적으로 혼인과 부모의 의무, 간음 등과 관련한 법 제도를 대거 정비했다.
법 개정의 이면에는 이탈리아반도 내에서 본토인들의 인구를 증대시켜야겠다는 의도도 담겨있었다.
당시 도입된 법 중에는 아이를 세 명(또는 네 명) 이상 낳으면 각종 혜택이 부과되는 ‘세 아이 법(jus trium liberorum)’도 있었다.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전통사회에선 아이를 4명 이상 낳아야 기존 인구가 유지됐기에 도입된 규정이었다.
이에 따라 로마제국에선 결혼과 출산이 장려됐고, 미혼남성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남편이 없는 여성들에게 중과세가 부과됐다.
이들 법은 기원후 9년 ‘독신자’ 집정관이었던 파피아 포파이아에 의해 완화됐고(Lex Papia Poppaea), 성직자의 독신을 강조한 기독교의 확산과 함께 사문화됐다고 한다.
한편 또 다른 로마 시대 주요법인 ‘율리아법’(lex Iulia)에선 ‘미혼자’(caelibes)들은 상속품이나 유산을 소유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명시됐다. 결혼을 했더라도 ‘자식이 없는 사람’(orbi)은 유산의 절반만 소유할 수 있었다. 이 법은 남성의 경우 25~59세, 여성에겐 20~49세 동안 적용됐다.
최근 몇 년간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각종 출산 지원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대기업들도 앞다퉈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고, 자녀 1인 출산 시 1억원의 지원금을 준 한 기업은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저출산 기조가 바뀔 기미는 보이지 않은듯하다. 지난해 2·3분기 각각 0.7명을 기록하며 연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던 합계출산율이 4분기에는 0.6명대로 쪼그라들었을 것이란 비관적인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출산은 사회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적 수단이 동원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대책의 효용에서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세금이든, 지원금이든 돈으로 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길인지도 의문이 든다.
김동욱 오피니언부장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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