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묶이고 살던 집 안 팔려"…잔금 마련 비상

입력 2024-02-27 17:43   수정 2024-02-28 00:30

“보증금을 빼서 잔금을 치르려 했는데 다음 세입자가 잘 안 구해져 걱정입니다. 대출 한도도 없는데 잔금을 제때 낼 수 있을지….”(서울의 한 빌라에 거주 중인 청약 당첨자)

준공을 앞둔 새 아파트 입주 잔금 마련에 골머리를 앓는 분양 계약자가 늘어나고 있다. 대출 규제 강화와 거래 부진 등이 입주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분양대금이 제때 들어오지 않는 일이 증가하면서 건설사의 유동성 리스크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입주율 하락, 준공 지연도 부담

27일 업계에 따르면 아파트 계약자 중 대출 규제와 시장 침체로 기존 집이 안 팔려 잔금 마련에 애를 먹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아파트 입주율(2~3개월의 입주 지정 기간에 자금을 완납한 가구 비중)은 72.1%였다. 주택 경기가 좋던 2022년 1월 85.1%, 2021년 1월 84.1%를 나타낸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낮다.

지난달 기준 분양 계약자의 미입주 사유로 ‘기존 주택 매각 지연’(46.8%)이 가장 많았다. 통상 잔금대출 미확보 비중이 높은데, 최근엔 주택 매각 지연을 꼽은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전국 아파트 거래량은 2만6934건으로, 지난해 1월(1만7841건) 후 11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지난달 3개월 만에 2000건을 재돌파하는 등 새해 들어 거래가 소폭 늘었지만, 고금리와 경기 침체가 짓누르고 있어 거래 활성화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와 공사비 인상, 미분양 등으로 아파트 준공이 지연되는 것도 건설사에는 부담이다. 준공이 늦어지면 건설사가 지체보상금을 지급하거나 책임준공약정 사업장의 경우 채무를 인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서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전국 준공 지연 물량은 2019년 6000여 가구에서 작년(11월 기준) 15만6000여 가구로 급증했다. 지방은 지난해 준공 지연 물량 비중이 31.8%에 달한다. 대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은 공사 기간과 공사비를 둘러싸고 시공사와 갈등을 빚자 지난달 상경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수도권도 10가구 중 2가구가 준공이 늦어진 물량이다.
레지던스 잔금 미납 리스크
수도권 주요 레지던스(생활숙박시설)에서 분양 계약자의 잔금 미납부 경고음이 켜지고 있다. 정부가 오피스텔로 용도를 바꾸지 않고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레지던스에 이행강제금을 물리기로 한 게 발단이 됐다. 그동안 레지던스를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게 사실상 허용돼 대출이 잘 나왔다. 하지만 정부가 편법을 바로잡겠다고 나선 2022년 이후 불법 딱지가 붙자 금융권의 태도가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게 분양 계약자의 얘기다.

송민경 한국레지던스연합회장은 “거주가 불가능한 곳이 돼 버리니 과거 감정가의 70%까지 대출해주던 금융회사가 지금은 40% 정도까지만 내준다”며 “분양가가 감정가보다 높은 만큼 분양가를 기준으로 따지면 20~30%만 대출이 나오는 셈”이라고 말했다. 주택이 아닌 레지던스는 전세대출이 나오지 않아 세입자를 들이기가 어렵다. 전세 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치르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 인천 연수구 송도, 경기 안산시 등에서는 준공을 앞둔 레지던스에서 잔금 확보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한 레지던스 분양자는 “주택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계약한 사람이 대다수”라며 “잔금 납부를 거부하거나 시행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말했다.

주차장과 복도 폭 규제로 오피스텔로 용도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레지던스 등 비아파트는 아파트에 비해 PF 위기 타격도 컸다”며 “준주거 등으로 규제를 완화하지 않으면 중소형 건설사 위주로 자금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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