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SK(머스크), MSC 등 거대 컨테이너선사들은 경쟁자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적자도 감수하는 ‘치킨 게임’을 감행했다. 프랑스가 CMA와 CGM을 통합해 하나의 회사로 만들고, 일본 3개 선사를 통합해 ONE을 출범시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 역시 다수의 국영 해운사를 COSCO로 합쳤다.
이는 1년 뒤 3분의 1로 급감했다. ‘정부 관리 회사’인 HMM이 규모를 꾸준히 늘려 작년 말 기준 선복량이 78만TEU로 늘긴 했지만, 1위인 MSC와 비교하면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글로벌 해운 산업에서 HMM의 작년 말 순위는 8위다.
해운업이 쪼그라들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K수출 기업들이다. 지정학적 위기 등으로 컨테이너선이 부족할 때마다 한국의 화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해외 대형 컨테이너선사의 배에 물건을 실어야 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만 해도 선박과 컨테이너의 부족으로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선박들이 부산항을 기항하지 않고, 곧바로 미국으로 가는 바람에 우리 수출 기업들은 발을 동동 굴려야 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수에즈 운하가 막힌 홍해 사태는 최근 사례일 뿐,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여러 상황을 감안하면 북한이란 존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섬나라’ 신세가 된 한국이 해운업을 등한시하는 것은 불가사의에 가깝다. 글로벌 주요 선사들을 보유한 국가는 덴마크 (머스크), 스위스(MSC), 프랑스(CMA-CGM), 중국(COSCO), 대만(에버그린, 양밍), 독일(하팍 로이드), 일본(ONE), 이스라엘(ZIM) 등 대부분 수출에 주력하는 국가다.
게다가 글로벌 해운업의 판 자체가 바뀌고 있다. 최근 머스크는 디지털 물류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전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해운, 자원개발, 항만 터미널 운영 및 내륙 물류, 중장비 제조 등에 이어 사업 영역을 디지털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머스크의 경쟁자는 MSC가 아니라 아마존이다. 소비자 문 앞으로 배송해주는 라스트마일까지 장악하겠다는 것이 머스크의 야심이다.
해운업은 미국, 유럽의 탈탄소 정책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산업이기도 하다. 앞으로 10여 년 내에 친환경 에너지를 활용하지 않는 물류는 화주로부터 배척당할 가능성이 높다. 대규모 자본력을 갖추지 않으면 이 같은 경쟁 기류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얘기다.
벌크선 등을 운용하는 중소 선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법이 글로벌 대형 해운사와 싸워야 할 컨테이너 국적선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격이다. 더욱이 우리는 세계 최강의 조선사를 3곳이나 보유하고 있지 않나. 하림그룹의 인수 실패로 재매각 절차를 밟아야 하는 HMM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해운법을 고칠 필요가 있다. 인수 후보가 많아야 정부도 혈세를 온전히 회수할 수 있을 것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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