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로펌에 밀렸나…'여의도 저승사자' 남부지검, 힘 빠진 이유

입력 2024-02-28 14:00   수정 2024-10-11 14:53



증권·금융 등 중요 경제 범죄를 전담으로 수사하는 서울남부지검의 영장 기각률이 매년 오르고 있다. 서울시내 5개 지검 중 구속·체포·압수 영장 모두 기각 건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28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0년 남부지검의 구속영장 기각률은 21%였지만 지난해 38.1%로 3년 새 17.1%포인트나 올랐다. 지난해 남부지검이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 118건 중 45건이 기각됐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중앙지검의 영장 기각률(31.9%)은 3년 새 8.1%포인트 떨어졌다.

서울남부지검은 주로 사안이 복잡한 금융·증권 범죄를 다루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2년 5월 법무부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현재 증권범죄합동수사부)을 부활시키며 민생 금융·증권 범죄 수사역량을 대폭 강화했다. 지난해 7월엔 가상자산합수단이 신설되며 암호화폐 관련 범죄를 전담으로 담당하고 있다.

남부지검에 수사 역량을 보강했음에도 영장 기각률이 급증하자, 검찰의 창이 로펌의 방패에 밀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수천억원대의 자금이 얽힌 복잡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가운데 초호화 변호인단으로 무장한 피의자가 늘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사례가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인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 사건이다. 검찰은 신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지난해 11월과 올해 3월 두 번이나 청구했으나 기각된 바 있다. 신 전 대표는 테라·루나 기반의 결제 서비스를 거짓으로 홍보한 뒤 1400억원대 투자를 유치했고, 폭락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도 이를 숨기고 보유하던 코인을 고점에 팔아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신 전 대표는 30여 명의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린 것으로 유명하다.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출신 박형철 변호사(사법연수원 25기)도 포함돼 있다. 신 전 대표가 선임한 법무법인 한 곳은 테라·루나 사태를 직접 수사하던 남부지검 이모 검사(39기)를 영입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펀드 자금을 불법 운용하고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는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의 구속영장도 지난해 9월 기각됐다. 당시 서울남부지법은 "일부 혐의에 대해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어 보이고 일부는 충분한 소명이 부족해 피의자의 방어 기회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장 대표도 검사 출신의 전관 변호인단을 꾸렸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사건 송치가 늘면서 연쇄작용으로 영장 기각률이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감원은 에스엠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시세조종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에 이어, 지난 1월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홍은택 카카오 대표, 이진수·김성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대표, 카카오 측의 법률 자문 역할을 한 법무법인 율촌의 변호사 두 명을 추가로 검찰에 송치했다.

남부지검은 지난 5일 평검사 인사에서 검사를 4~5명가량 보강했다. 검찰의 조직적 인력난을 고려하면 남부지검에 수사력을 집중시키는 모양새다.

법조계 관계자는 “증권·금융 업계를 수사하면 주로 대형 로펌을 선임하는 피의자가 많다”며 “과거보다 우수한 인력들이 줄줄이 로펌으로 가면서 구속영장의 필요성을 놓고 다툴 여지가 있는 경우 피의자 측의 방어논리를 깨기가 쉽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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