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정부의 상장사 저평가 해소 대책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된 직후 코스닥 업체의 IR(투자활동) 담당 임원·직원과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이 한 말입니다. 좋은 취지의 제도라는 덴 이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코스닥 기업의 기업가치 제고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게 대체적인 의견이었습니다.
투자가 절실한 코스닥 업체들에 '이익 창출', '배당' 등과 같은 내용은 먼 나라 얘기였기 때문입니다. 제도를 이행할만한 인력, 재원 등이 부족하단 점도 한계라는 지적입니다. 가뜩이나 관심이 저조한 코스닥 시장이 이번 정책을 기반으로 더 변두리로 밀릴 수 있단 지적이 나옵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들이 스스로 기업가치를 제고할 수 있도록 정부가 마련한 지원책입니다. 개별종목의 가치를 높여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문제인 저평가를 해소하겠단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발표된 1차 세부안을 둘러싸고 시장의 반응은 다소 냉담했습니다.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보다 뭐가 더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마련해라. 이를 이행하라. 공시하라'일 뿐, 명확한 내용이 없어 기업들로선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기 어렵단 지적입니다. 한 시장 전문가는 "'순이익의 30%는 주주환원해야 한다'라는 식의 구체적인 수치까지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코스닥 시장 내에선 '코스닥 죽이기'가 될 수 있단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밸류업 프로그램의 모델이 된 일본의 사례를 미뤄 보면 주가·증시 부양을 위해선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개입돼야 하는데, 코스닥은 특히 기관 비중이 5%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있는 기관투자자 자금마저도 유가증권시장으로 몰릴 수 있단 지적입니다. 코스닥에 대응되는 일본 스탠다드 내 기관 비중은 40%로 차이가 큽니다.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개정, 기업가치 향상이 예상되는 종목 중심의 지수·ETF(상장지수펀드) 개발 등을 통해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유입을 유도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도 코스닥에는 거의 해당되지 않습니다.
'밸류업 지수·ETF'로 기관을 끌어들이기도 한계가 있는 데다, 지수 자체도 코스피 종목 중심으로 꾸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야말로 '밸류업'은 코스닥 기업에게 있어서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란 얘깁니다.
권병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ETF 관련 방안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유인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일본 사례를 보면 출시된 'JPX 프라임 150 지수'의 성과가 상대적으로 부진하고, 상장된 정책 관련 ETF들의 총운용자산(AUM) 규모가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권 연구원은 또 "일본의 경우 지수를 ROE(자기자본이익률), PBR(주가순자산비율), 시가총액 등을 기준으로 만들었다. 또 기업들의 지배구조나 유동성이 좋은 기업을 기준으로 선별했다. 보통은 코스닥보단 코스피가 이러한 특징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지수에 편입되는 종목도 코스닥보단 코스피 종목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더군다나 코스닥엔 배당 늘리기와 같은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할 만한 인력, 재원이 없는 기업이 더 많습니다. 주주환원, 자사주 매입·소각을 못 한다고 해서 '밸류업', 즉 기업가치 향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닙니다. 기술 개발, 투자 등도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기업가치 제고 계획·이행도 돈과 인재가 많은 코스피 대기업 중심으로 참여가 이뤄지면서 양 시장 간 양극화가 극심해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코스닥 기업 중 40%가 수익이 나지 않는다. 즉 배당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기술특례상장 기업도 전체 코스닥 업체들 가운에 20%가량을 차지한다. 돈이 있으면 연구개발(R&D)에 투자하기 바쁘지 주주환원 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또 "코스닥 뿐만 아니라, 코스피 하위 250~300개 기업 또한 소외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금융당국이 제시하는 밸류업 프로그램 이행 가이드라인은 오는 5월 중 진행될 2차 세미나를 거쳐 올 상반기 확정됩니다. 하반기부터 가이드라인에 따라 준비된 기업들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세워 공시하고, 이를 이행하면 됩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용 가이드라인이 별도로 필요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 적 있다"며 "유인책이든 강제책이든 이왕이면 중소형주들도 밸류업을 같이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