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접근성을 자랑하던 한국 의료 시스템으로선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의대 증원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료계에선 의문을 품고 있다. 오히려 무리한 증원이 의학 교육의 질적 저하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반면 정부는 노인 인구 증가로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의료 수요가 늘고 있다며 의대 증원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미래 상황을 예상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다 보니 의료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예측도 쉽지 않다. 의대 증원에 대한 명확한 답도 내기 어렵다. 의사 인력의 숫자만큼 질적인 면도 충분히 고려돼야 하는 상황에서 의학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을 소개한다.
올러의 작품 중 하나인 ‘학생(The student·그림)’에는 집중해서 바느질하는 여인과 책을 보며 공부하는 남자가 있다. 남자는 두꺼운 책을 보고 있는데, 아무리 집중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을 하고 있다. 손으로는 무언가를 꼼지락거리며 만지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머리뼈(두개골·skull)로 보인다. 양쪽 눈확(머리뼈 속 안구가 들어가는 공간)이 눈에 띄는데, 아마 머리덮개뼈(calvaria)를 자르고 위에서 본 속 면을 공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공간은 뇌가 놓이는 부위로, 뇌에서 나온 뇌신경(cranial nerve)과 혈관이 교통하는 작은 구멍들이 있다. 이 부위는 실제 뼈를 들고 공부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의자 위에 놓인 커피잔을 봐서는 밤을 새울 기세다. 아니면 사랑하는 남자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밤새 바느질하는 여인을 위한 커피일지도 모른다.
학비를 조금이라도 더 마련하기 위해 창가에서 허리를 숙인 채 바느질에 집중하고 있는 여인에게 밝은 햇살이 비친다. 이들에게 펼쳐질 아름다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일까?
의사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서 그런지 이 작품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주치의로 유명한 폴 가셰 박사가 잠시 소장했다. 지금은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문의 한 명을 양성하는 데 약 8억6700만원이 들어간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보고됐다. 외국은 의사가 사회에 기여할 부분을 고려해 어느 정도를 국가나 사회에서 분담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전공의 등의 육성 지원 및 전문의 자격시험 관리 예산으로 13억원을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파업하는 전공의들을 처벌하겠다고 하고, 휴학하려는 의대생을 막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 등의 단체와 많은 의사도 현재 무너져 가고 있는 의료 체계를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다. 필자가 속한 해부학과 같은 기초의학 역시 기피 대상이 돼 20~30대 전공자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의료 정책에 긍정적인 변화가 발생하길 바라는 마음은 정부나 의료계나 똑같다.
다만 국민 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건강을 책임질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에 대한 위협 없이 진행되길 바란다. 의사 증원 확대를 놓고 대치 중인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의 의사(意思)를 나누며 이해와 공감을 확대하길 기대해본다.
이재호 계명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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