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소비재 기업의 아시아 본부에서 마케팅 임원으로 일하는 워킹맘 이모씨(49)는 일과 가정을 함께할 수 있는 1등 공신으로 주저 없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꼽았다. 이씨는 “한국에서는 2015년에 월 330만원을 줘도 아이 둘을 봐 줄 ‘이모님’을 구하지 못했다”며 “홍콩에 가니 신원이 보장된 풀타임 전업 가사도우미를 월 80만원에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이 28일 해외 출산·육아 지원 제도를 알아보기 위해 인터뷰한 세 명의 해외 워킹맘은 “헬퍼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더 다양한 커리어 기회를 찾아 홍콩과 싱가포르로 이주한 커리어 우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에서 임원으로 일하는 임주영 씨(48)는 “물가 높은 홍콩이 아이를 키우는 데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순 없지만, 헬퍼가 여성의 커리어 유지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헬퍼들은 워킹맘과 함께 숙식하는데 아침 식사부터 자녀 등·하원, 집 청소까지 전담한다.
해외 워킹맘은 고용과 해고가 상대적으로 유연한 시스템도 경력직 여성에게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임씨는 2016년 일하던 투자은행에서 감원 대상이 되며 직장을 잃었지만, 수개월 내로 새로운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이씨는 “홍콩에선 성과가 좋지 않으면 해고가 쉬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직장을 찾기가 한국보다 훨씬 쉽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내가 낙오되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느낌으로 버텨야 한다면 홍콩에서는 다른 선택지를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육아 친화적인 근무 분위기도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국내 증권사의 홍콩법인에서 변호사이자 기획자로 일하는 손성임 씨(40)는 “야근이 많은데 어린아이를 키울 수 있겠느냐”며 “아이가 있는 직원에겐 추가 업무를 최소화하고 근무 시간을 줄여줘야 다른 직원도 아이를 갖고 싶은 생각이 생긴다”고 했다.
그는 “한국 조직은 육아를 개인의 사생활로 취급한다면, 홍콩 조직은 사회적인 일로 여긴다”며 “홍콩에선 아이가 학교에서 갑자기 일이 생기면 근무 도중 학교를 찾아가고, 제때 하지 못한 일은 점심시간에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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