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형 로펌 출신 미국 변호사가 아내를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며 자신에게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 혐의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8일 진행된 미국 변호사 A모씨의 2차 공판에서 변호인 측은 "피고인의 행위로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살해하려는 의도를 갖고 (피해자를) 사망하게 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 혐의가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인 측에서는 사망이 예기치 못한 다툼으로 촉발된 우발적 가격 행위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아내를 살해하게 된 게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으며 행위에 고의성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YTN에 "통상 범행이 발생하게 되면 계획적이냐, 우발적이냐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논점이 될 수 있다"면서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시신에서는 폭행 흔적도 있었지만 직접적인 사인은 경부 압박, 그러니까 목졸림이라고 국과수 소견이 나왔다. 그러면 피해자가 목이 졸렸을 때 분명히 정신을 잃었는데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사망할 때까지 계속 압박했다는 거 아닌가. 이 상황을 우발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살인의 고의성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나중에 형량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살인이냐 아니면 상해치사냐를 다투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살해 도구를 가지고도 검찰과 변호인 측의 입장은 엇갈렸다.
검찰 측은 공소장에 길이 35cm, 그리고 지름 2.5cm 쇠 파이프로 피해자의 이마와 얼굴을 힘껏 여러 차례 가격했다고 적시했으나 변호인 측에서는 이 범행도구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쇠 파이프가 아니고 고양이 놀이용, 자녀들과 함께 사용했었던 그런 금속 막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김세라 법률사무소 예감 대표변호사는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고 상해치사죄 법정형은 3년 이상 유기징역이다"라며 "법정형의 차이도 크지만 고의범과 결과적가중범은 죄질 자체도 전혀 다르게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상해치사죄는 과실범은 아니고 결과적가중범이라고 부르는데, 상해를 입힐 고의만 있었는데 실수로 결국 사망에 이르렀을 때 성립하는 죄다.
형법상 과실범은 원칙적으로 불가벌이고 별도의 처벌조항이 있는 과실범만 처벌된다. 예를 들어 과실재물손괴, 과실절도, 과실횡령 등등 대부분의 형사 범죄는 과실로 범해도 처벌되지 않지만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과실범도 처벌되는 특별한 조문이다.
김 변호사는 "대부분의 형사재판에서 피고인들은 고의를 부정한다. 이 사건과 같은 살인죄의 경우는 애매하게 비슷한 상해치사죄가 존재하기도 하고 법정형에 차이도 있으니 변호인 입장에서는 상식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범위에서 피고인에게 가장 유리하게 상해의 고의만 인정하면서 죽인 것은 실수였다고 변론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한편 A 씨 측 변호인은 그의 부친을 양형 증인으로 신청했다. 양형 증인이란 피고인에 대한 형량을 정하기 위해 재판부가 참고로 삼는 증인을 말한다. 재판부는 고민해 보겠다며 채택 여부를 법정에서 밝히진 않았다.
검사 출신인 신병재 법무법인 대륙아주 파트너 변호사는 "보통 살인이나 성범죄 등은 두 사람만 있을 때 은밀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증인이 잘 없다"라며 "그럴 때 신청하는 게 양형 증인인데 당연히 피고인에게 유리한 말을 할 것이기 때문에 법원에서 보통 채택을 잘 안하고 진술서로 대체하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신 변호사는 "워낙 화제가 된 사건이라 법원이 양형 증인을 받아준다면 그 부친은 두 사람이 평소 관계가 어땠는지, 피고인의 심성이 평소 어땠는지 등을 판사에게 설명해 사건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임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재판부는 양형 증인의 발언보다는 살해 당시 가격한 부위, 두사람의 평소 관계, 살인 행위를 한 이후 보인 행동 등을 다양하게 보고 고의성 여부를 판단한다"고 했다.
A씨의 다음 재판은 3월 19일 진행될 예정이다. 이날은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 등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지난해 12월 3일 이혼 소송 제기 후 별거 중이던 아내의 머리를 둔기로 여러 차례 가격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12 신고받고 경찰과 소방대원이 도착했을 당시 현장에는 A 씨 부친이 함께 있었다. A씨가 범행 직후 경찰이나 소방이 아닌 부친에게 전화해 알렸기 때문이다. 그의 부친은 전직 5선 국회의원으로 알려졌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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