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에어컨 없다니까 전세가 안 나간다더라고요.”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송파롯데캐슬시그니처 전용면적 84㎡ 소유자인 A씨는 최근 전세를 내주려고 중개업소를 찾았다가 마음이 답답해졌다. 막 태어난 손자가 사는 동네로 이사하려고 했는데 이 같은 얘기를 들었다. 호가가 직전 전세 거래(7억원)보다 낮은 6억원대로 내려갔다. 입주 2년을 채우자 전세 매물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A씨는 최근 집값이 반등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매도 시점을 늦추려고 했다. 하지만 은퇴까지 겹쳐 현금 마련이 어려워지자 전세 대신 급매로 처분했다.
서울 전세가가 40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입주 후 전세 계약 2년째를 앞두고 전세 매물이 쌓이는 단지도 나오고 있다. A씨처럼 대출을 감당하기 어려워 전세로 내놓으려는 집주인이 대표적이다. 전세 계약 만료 3~4개월 전에는 해당 단지를 돌면서 저가 물건을 잡을 수 있다는 조언이다. 실거주 의무 유예로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처럼 전세 물건이 급증하는 단지도 나타나고 있다.
2022년 3월 입주해 2년 차를 맞은 은평구 증산동 DMC센트럴자이(1388가구) 전용 84㎡는 작년 11월 8억5000만원에 전세로 거래됐다. 지난달 18일 기준으로 7억5000만원까지 내렸다. 전체 물건은 약 100개로 같은 기간 86.7% 늘었다.
입주 4년 차가 된 마포구 대흥동의 마포그랑자이도 작년 말부터 올초까지 전용 84㎡ 전셋값이 10억원을 웃돌다가 지난달 8억원 선까지 하락했다. 2020년 7월 시행된 실거주 2년 의무를 피해 전세 계약이 대거 체결됐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2020년 임대차 3법으로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에 의해 4년간 전세가 잠겼다가 이번에 많이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단지의 전세 물건은 작년 9월 10건 안팎에 머물다가 최근 69건으로 급증했다. 2020년 5월 입주한 양천구 목동센트럴아이파크위브(3045가구)도 최근 전세 물건이 104건으로 3개월 전에 비해 두 배가량 불어났다. 전용 84㎡ 전세가 역시 지난달 24일 6억1000만원에 거래돼 3개월 전에 비해 1억원 가까이 하락했다.
C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실거주 의무 3년 유예라서 ‘2+2 계약’이 아니라 ‘2+1 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저평가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강동구 길동의 강동헤리티지자이(1299가구)는 오는 6월 입주를 앞둔 가운데 전세 물건은 95건으로 3개월 전 대비 48.4% 불어났다. 전용 84㎡ 전세 호가는 6억원 선까지 내렸다. 전용 59㎡는 4억원대 후반까지 호가가 떨어졌다. 전세 수요가 대단지인 올림픽파크포레온으로 몰리다 보니 지하철역과 거리가 비교적 멀고 학군이 다른 강동헤리티지자이의 수요가 빠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새 아파트는 조합원 매물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강동구 둔촌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같은 면적이라도 조합원 매물은 팬트리(식품저장고), 에어컨 등 옵션이 설치돼 인기가 좋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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