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에너지회사 대표 격인 두 회사가 맞닥뜨린 재무위기는 포퓰리즘 정책의 끝없는 후폭풍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전은 2021~2023년 ‘43조원 누적 적자’ 여파를 극복하지 못하고 하루 이자 부담만 121억원에 달하는 부실기업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다섯 차례 요금을 올렸지만 한전채 발행 등으로 21조5600억원을 차입해 총부채(202조4000억원)가 200조원대로 팽창했다. 가스공사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다. 가스공사 부채는 47조4000억원(2023년 말)으로 50조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이자 비용 증가율은 75%로 한전(57%)보다 높다. 정치적 압박에 요금 인상이 무산돼 여전히 원가의 80% 수준에서 가스를 공급하는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두 회사의 천문학적 부채와 그에 따른 이자 부담 급증은 당분간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 한전은 뒤늦게 전기료를 인상하며 경영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2027년까지는 해마다 4조~5조원의 이자 부담을 피할 길이 없다. 송·배전망 등 예정된 인프라 건설만으로도 2027년 회사 부채가 226조3000억원까지 늘어날 수밖에 없어서다. 가스공사 역시 화력발전소 폐지로 액화천연가스(LNG) 사용이 확대됨에 따라 생산시설, 전력비축기지 등 인프라 확충이 불가피하다. 에너지 공기업의 부실이 한국 미래산업의 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훼손하고 있다. 한전이 지난해 용인반도체 클러스터 전력설비 투자에 15조6000억원을 투입하려다가 92%밖에 집행하지 못한 데서 부작용이 잘 드러난다.
사정이 이런데도 ‘탈원전’으로 대표되는 에너지 포퓰리즘이 초래한 부실의 악순환에서 탈출할 노력은 안 보인다. 지난해 정전 건수는 933건으로 5년 새 84%나 급증했다. 이를 만회하려고 한전은 올 설비투자액을 작년보다 2조원 늘려 잡았지만 이 또한 빚을 끌어오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원가를 밑도는 에너지가격 현실화 움직임도 미미하다. 에너지 포퓰리즘의 주범인 정치권은 오늘도 총선용 퍼주기 경쟁에 여념이 없다. 후폭풍이 얼마나 더 커져야 정신 차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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