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인재를 이공대로 유입하려면 이들에게 의대 출신 못지않은 대우를 하는 사회 환경이 마련돼야 합니다.”
올해 개원 20년을 맞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의 이건우 총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심각해진 의대 쏠림을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대기업에 가는 이공대생이 의사에 비해 훨씬 적은 연봉을 받고, 이들을 가르치는 이공계 교수의 월급은 기업에 간 제자에 비해 훨씬 적은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컴퓨터지원설계(CAM) 분야 세계적 권위자로서 서울대 공대학장, 한국공학교육학회장 등을 지내며 우리나라의 이공계 정책을 주도해 온 이 총장은 이공계 인재 육성을 위해 “범국가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2030년까지 반도체는 5만6000명, 미래차는 4만 명, 인공지능 분야는 1만 명의 인재가 부족하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지만 정작 인재들은 의대로만 쏠리고 있어서다. 이 총장은 “이공계가 발전해야 나라가 산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식들은 의대를 보내고 싶어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의사는 오래 일할 수 있고 대우가 좋기 때문인 만큼 이공계 인재들에 대한 대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이 총장은 두 달여 만에 학교의 미래를 바꿀 발전 전략을 제시했다. 임기 중 미국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스탠퍼드대,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UIUC) 등 글로벌 대학과 공동연구를 위한 연구소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이 대표적이다. ‘축구의 손흥민급 스타 교수’를 10명 채용·육성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또 KAIST(750명), UNIST(300명) 등에 뒤지는 DGIST 교수 규모(150명)를 대폭 늘릴 계획이다. 이 총장은 “공학전문대학원, MIT의 ‘슬론 스쿨’과 같은 경영대학원도 설립할 것”이라며 “국내 이공계가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서울대에 국내 유일한 ‘공학전문대학원’을 만들어 성공했던 경험을 발판 삼아 DGIST에서도 지역 기업과 연계된 과정을 운영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공학전문대학원은 기업체 임직원이 자신의 회사 문제를 연구 과제로 삼아 석사학위를 받는 대학원이다. 그는 이 시스템이 “지역 산업진흥에 기여할 수 있다”며 “탁월한 공대는 실용적인 연구와 새로운 이론이 어우러지고 국가 산업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영대학원은 대구, 공학전문대학원은 대기업이 많은 구미 등 경북과 경남까지 확대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적인 대학 평가에서 한국 대학이 낮은 순위를 받은 것은 국제 공동연구와 홍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급성장한 싱가포르난양공대, 홍콩과학기술대와 비교했을 때 한국 대학들의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그는 “글로벌 공동연구가 부족해 국내의 우수한 연구가 충분히 홍보되지 못해왔다”며 “대학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회 전체가 국제화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장 취임 후 DGIST는 보이스프롬옥스퍼드에서 일하는 교수를 최근 초빙석좌교수로 임명하는 등 글로벌 홍보 강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총장은 “DGIST에 와보니 연구성과가 싱가포르와 홍콩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며 “우리의 훌륭한 연구를 알리는 한편 국제 공동연구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글로벌 역량 강화도 그의 관심사다. 이 총장은 “과기원 학생들의 성향이 비슷해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며 “학생들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돕고 외국인 학생도 최대한 많이 받아 다양성과 융합연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 이건우 총장은…
△1978 서울대 기계공학학사
△1979~1984 MIT대학원 석·박사
△1986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
△2013~2017 서울대 공대학장
△2016~2017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초대 원장
△2023.12 제5대 DGIST 총장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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