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호의 저작권 세상] 대학가 스캔본 문제의 해결책은?

입력 2024-03-03 18:40   수정 2024-03-04 00:28

학기 시작을 맞아 대학 강단에 서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 책을 멀리하는 대학생이 많아진 상황이지만, 강의를 이해하고 전문성의 폭을 넓히려면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최신의 학술적 성과까지 반영한 교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나날이 오르는 책값도 문제다.

학생 탓을 할 수 없다면 결국 연구자들과 학술출판사에 책임을 돌려야 하는데, 그것 역시 온당하지 않다. 주변을 보면 교재의 개정판을 내고자 했으나 출판사가 거절했다며 전전긍긍하는 연구자가 많다. 융합연구 등 새로 등장한 분야에 관한 교재를 집필했으나 이를 책으로 만들어 줄 출판사를 찾지 못했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학술출판사 역시 갈수록 줄어드는 학술서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 중이며, 수요가 위축되면서 책값 상승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른바 ‘스캔본’까지 등장해 교재 시장을 더욱 위축시키고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스캔본이란 종이책을 스캔한 PDF 등 파일을 의미한다. 저작권법 제30조는 비영리 목적일 것을 조건으로 개인이 저작물을 복제할 수 있다고 정한다. 자신이 구한 책을 스스로 스캔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엄격한 기준이 잘 지켜지지 않아 학생들 사이에서 스캔본이 공유되거나 아예 매매되는 일까지 벌어진다는 데 있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 복제본을 공유하는 것은 법으로 허락하는 일이지만, 그 범위는 넓지 않다. 다시 말해 스캔본 공유는 대부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스캔본이 널리 퍼진 것이 현실이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1.9%가 스캔본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학생에게 스캔본은 매우 치명적인 유혹이다. 책을 정가에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비용으로 구할 수 있고, 무겁게 종이책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으며, 필기하고 책을 보관하는 것 역시 매우 손쉽기 때문이다. 무심코 한 행동으로 학술 생태계가 파괴된다면, 결국 그 피해는 미래세대 대학생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캔본 공유를 개인 탓으로만 돌려 단속하고 처벌한다고 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스캔본 거래가 더욱 음성화되고 지능화될 뿐이다.

더욱 근본적인 대안은 대학생이 굳이 스캔본을 구할 필요가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출판사가 전자책을 내고 있으나, 종이책보다 체감될 만큼 저렴하지 않고 사용하기에 매우 불편하다. 각 출판사가 제공하는 앱은 인터페이스가 다를 뿐만 아니라 편의 기능 제공에도 매우 인색하다. 무엇보다 전자책 자체를 꺼리는 연구자 및 출판사가 여전히 많다. 스캔본만큼이나 편리하면서 학생들에게 충분히 좋은 조건에서 전자책 교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여러 대학은 전자책 교재를 패키지 형태로 구매해 대학 구성원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해외 출판사 역시 교재를 학생 개인에게 판매하기보다 대학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꾸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역시 다양한 대안을 두고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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