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결혼이란 가족의 확장에 가깝다.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늘어날 거라는 기대가 있다. 일각에선 가족이 늘어나면 어차피 전처럼 원가족에 신경 못 쓰기는 매한가지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기에 대해서는 “동생이 생긴다고 너의 사랑을 뺏기는 게 아니라 동생에게 필요한 만큼 사랑이 더 생기는 거야”라는, 어릴 때 많이 들었던 이 말로 답을 대신하겠다. 당시의 난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아직도 완전히 맞는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외동딸로서의 삶은 한결같이 달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새 들어 그 속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족이 늘어나는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생일이 다가오는지, 요새 건강은 어떠한지, 안녕하신지 등 안부가 궁금해진 어머님과 아버님이 생겼다. 신경 쓸 사람이 늘어나면서 피로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지만, 부모님과의 사이가 소홀해졌냐고 하면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결혼식을 넉 달 앞두고 남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했다. 둘 다 수십 년을 부모님과 함께 본가에서 살아왔다. 따로 나와 살려니, 부모님도 우리도 싱숭생숭하긴 마찬가지였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주위에서 같이 사니 어떠냐고 묻곤 하는데 나는 “빈틈없이 행복하다”고 답한다. 평일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어 행복하다. 서투른 솜씨로 차린 집밥,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늘어놓는 넋두리, 잘 준비를 모두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가 너무 소중하다.
금요일이면 각자 본가로 퇴근하는데, 같이 살 때보다 대우가 좋아졌다.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건강한 거리감을 확보해서인지 배로 반갑다. 토요일 낮이면 함께 맛있는 걸 먹고 카페에 간다. 1주일간의 근황을 나누고 나면 ‘더 바랄 게 딱히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집을 간다? 장가를 든다? 결혼이 선택의 대상이 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고 느낀다. 서로의 삶에 가치가 더해질 것으로 기대돼야 결혼이 성사되는 시대가 아니던가. 고로 결혼식 날 자식을 떠나보낸다며 슬피 우실 필요 없다. 나는 결혼을 통해 더 많은 순수한 사랑과 응원을 받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전보다 더 크게 성장하고, 더 멀리 갈 수 있게 됐다.
그러니 부디 눈물 없는, 눈물이 있더라도 기쁨과 감격의 눈물뿐인 결혼식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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