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나서는 시드전이었어요. 저도 물론 가기 싫었지만, 이대로 골프를 끝낼 수는 없었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골프와 시원하게 이별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난해 11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대표 ‘베테랑’ 김지현(33)은 전남 무안으로 내려가기 위해 짐을 쌌다. 시즌 상금 랭킹이 64위로 떨어지면서 2024시즌 시드를 자력으로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안CC에서 열리는 시드순위전은 선수들이 입을 모아 “절대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무대다. 내년 시즌 생존권이 걸린 네 번의 라운드. 무안의 강하고 찬 바람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키워 평소 실력도 발휘하지 못하기 일쑤다. 이 때문에 30대에 들어선 선수들은 자력으로 시드 확보가 어려워지면 시드전 출전 대신 은퇴를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말 그대로 벼랑 끝에서 돌아와 시작하는 시즌, 김지현은 “최대한 톱10에 많이 들어서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무조건 우승컵을 들어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김지현은 KLPGA투어를 대표하는 베테랑이다. 2010년 데뷔해 올해로 프로 15년차를 맞는다. 2017년 첫 승을 포함해 3승을 달성하며 KLPGA투어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고 2018년과 2019년 각각 1승을 추가했다. 이후 우승은 없었지만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 풀리지 않았다. 그는 “샷과 퍼트 모두 좋았는데 스코어로 연결되지 않았다”며 “결과에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매 대회 조급해졌고 악순환이 이어졌다”고 돌아봤다.
그의 장기였던 날카로운 아이언샷도 조금씩 무뎌졌다. 그러면서 김지현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공격적인 플레이 대신 소극적이고 안전한 플레이를 선택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압도적인 역량으로 다음 시즌 풀시드를 따내며 당당하게 귀환을 알렸다. 시드전이 끝나고는 심한 몸살을 앓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매 순간 집중하고 긴장한 대회는 오랜만이었다”며 “이제 진짜 루키로 돌아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벼랑 끝에서 돌아온 시즌, 김지현은 “제가 살아있음을 다시 한번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동계훈련에서 비거리를 늘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요즘 어린 선수들이 정말 잘 친다. 비거리, 샷, 퍼트 모두 갖춘 친구들과 경쟁하려면 저 역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은 이번 시즌 시작을 앞두고 메인 스폰서(퍼시픽링스코리아)와 매니지먼트사(프레인글로벌 스포티즌)를 모두 바꿨다. 다음달 KLPGA투어 국내 개막전인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을 시작으로 다시 한번 날아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그는 “올해는 제 골프 인생에서 큰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며 “‘김지현’이라는 선수를 다시 증명하는 시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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