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의 3.7%를 걷는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의 ‘몸집’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전기료 상승 여파로 수입은 늘어나는데 마땅히 쓸 곳이 없어서다. 올 한 해 타기금과 특별회계에 나눠주는 자금을 빼면 못 쓰는 돈이 사상 처음 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산업계에선 “사용처를 제대로 찾지 못한 돈을 거둔 뒤 취지에 맞지 않는 곳에 쓰는 셈”이라며 “반도체 등 기반산업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쓸 게 아니라면 전력기금 요율을 낮춰 국민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징수 목표액 작년보다 23.7% 늘어
4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올해 전력기반기금 징수 목표액 3조2027억원 대비 사업 시행계획 규모 2조1118억원의 차이가 사상 처음으로 1조원(1조910억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징수 목표액이 전년(2조5894억원)보다 23.7% 늘어난 반면 전력기반기금 사업 시행계획 규모는 1년 전(2조3989억원)보다 11.9% 낮춰 잡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전기 요금의 일부를 기금으로 걷었지만 사용처를 찾지 못해 돈이 남았다는 얘기다. 산업부는 해당 자금을 다른 기금이나 특별 회계에 무상으로 이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금 누적 잉여자금 역시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력기금 규모가 불어난 이유는 간단하다. 전력 사용량과 전기요금이 동반 상승하고 있어서다. 전기료는 최근 1년간 ㎾h당 26원 올랐다. 전력기금은 전기요금의 일정 비율로 걷는 준조세다. 징수율은 6.5% 이내에서 시행령으로 규정하도록 돼 있다. 2005년 12월부터 현재까지 3.7%를 적용했다. 한 달에 10만원의 전기요금을 냈다면 이 중 3700원은 한국전력이 아니라 정부가 가져가는 셈이다.
기업 부담도 커지고 있다. 2021년 전기 사용 요금(1조7460억원)으로 추산한 삼성전자의 2022년 전력기금 부담액은 760억원이다. SK하이닉스는 351억원을 낸 것으로 분석됐다. 삼성디스플레이(215억원) 등 상위 다섯 개 회사가 1464억원을 냈다.
다른 기금에 무상 이전하기도
문제는 법으로 정해진 사용처가 제한적이다 보니 ‘노는 돈’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전력기금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노후 시설 교체,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한국에너지공과대(한전공대) 설립 지원 등에만 쓸 수 있다. 마땅히 사용할 곳이 없다 보니 예금 성격의 머니마켓펀드(MMF)와 채권에 각각 7691억원, 1800억원을 예치했다.
다른 기금이나 특별 회계에 무상 이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정부는 2022년부터 전력기금에서 매년 1조3118억원을 에너지특별회계로 넘겨 전기차 보조금을 주는 데 썼다. 매년 2000억원은 기후위기 대응기금으로 전용되고 있다.
정권 입맛에 맞게 전력기금을 ‘쌈짓돈’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2년 전력기금 사업비 2조6000억원 중 1조3000억원을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신산업 활성화 사업에 쓴 게 대표적이다.
산업계에선 징수율을 낮추거나 당초 설립 취지에 맞게 전력 인프라 건설 등에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업계 관계자는 “수천억원이 드는 SK하이닉스의 반도체클러스터 시설 조성 비용을 회사 측이 부담했는데, 기금 운용 취지를 넓게 해석해 송전망 확충 등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