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당직자와 후보들에게 설화 주의보를 내렸다.
한 위원장은 지난 5일 당직자와 후보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총선을 앞두고 부적절한 발언이 나오지 않도록 더 주의해 줄 것을 요청한다"며 "후보나 예비후보들은 우리 당의 얼굴이다. 잘못된 비유나 예시를 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지난 3일 당내 성일종 의원이 서산장학재단 장학금 전달식에서 인재 육성 필요성을 강조하며 그 예로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언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인 것을 의식해서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19일에도 "고개 빳빳하게 쳐들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같은 입단속은 과거 선거 막판 여러 망언으로 판세가 뒤흔들렸던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총선 판세를 뒤흔든 대표적 설화로는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이 회자된다. 그는 젊은 층의 투표를 독려하는 취지에서 "60,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고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정 의장은 당 의장과 공동선대위원장 사퇴까지 선언했지만, 총선에 악영향을 미쳤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차명진 전 의원의 '세월호 텐트' 발언으로 비판받았다.
2012년 총선에서는 '나꼼수' 출신 김용민 민주당 서울 노원갑 후보가 여성·노인·기독교 비하 막말로 표를 잃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한국당 정태옥 대변인은 한 방송에 출연해 서울 살던 사람이 이혼하거나 직장을 잃으면 부천에 가고 부천에 있다가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로 간다고 '이부망천' 발언했다. 같은 당의 유정복 인천시장을 옹호하기 위한 발언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센 역풍을 맞았다.
21대 총선을 앞두고는 국민의힘의 전신 미래통합당 황교안 당시 대표가 총선을 2주가량 앞둔 4월 "호기심 등으로 n번방에 들어왔다가 그만둔 사람에 대해선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해 논란을 빚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0년 부산에서 민주당·더불어시민당 합동 선거대책회의에서 "부산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왜 이렇게 부산은 교통 체증이 많을까', '도시가 왜 이렇게 초라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해당 발언은 100년 전 만들어진 경부선 철도가 부산을 동서로 갈라놓은 것이 부산을 교통 체증이 많은 초라한 도시로 만든 원인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나온 발언이지만 '지역 폄하' 논란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지난해 7월엔 김은경 당시 민주당 혁신위원장이 남은 수명에 비례한 투표권 행사가 합리적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950만 노인들의 역린을 건드려버렸다. 김 위원장이 뒤늦게 노인회를 찾아가 사과했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22대 총선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정치권에서는 고소·고발, 의혹 폭로 등 '네거티브 전략'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천 계양을에 출마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을 윤석열 대통령 처가 소유 토지 근처로 변경했다'는 취지로 말한 이재명 대표의 주장이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고발에 나섰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도 자신의 '돈 봉투 수수 의혹'을 언급한 이 대표를 지난달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정 의원은 이 대표가 최고위원회에서 "정우택 후보가 단수 추천을 받았던데, CCTV 영상에 돈 봉투를 주고받는 영상이 그대로 찍히지 않았나"라고 한 데 대해 "내가 단수추천을 받았다? 명백한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라고 페이스북에서 반박했다. 이 대표는 이후 정 의원이 경선을 거쳐 후보가 된 점을 확인한 뒤 빛의 속도로 사과했지만 허위 사실 공표 고소장을 피할 수 없었다.
민주당은 '사천(私薦)' 논란이 제기된 권향엽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을 예비후보가 이 대표의 아내 김혜경 씨의 수행비서가 아닌데도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며 일부 언론과 한 위원장 등 관계자들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권향엽 후보자가 김혜경 씨를 수행 안 했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 아닌가"라며 "민주당이 거짓에 터잡아 한동훈 위원장을 형사 고발한다면, 국민의힘은 즉시 무고죄의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맞대응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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