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흄AI의 소프트웨어는 입소문을 타고 병원, 헬스케어 기업, 연구기관 등 미국내 2000여 곳으로 납품처를 넓혀나갔고, LG는 후속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성장성 있는 스타트업을 통째로 사들이기보다는 초기 투자를 통해 실력을 꼼꼼히 살펴본 뒤 ‘될성 부른 나무’로 확인된 곳에만 추가 투자하는 ‘LG식 미래기술 확보 전략’을 펼친 것이다.
○후속 투자로 시너지 노려
7일 산업계에 따르면 LG는 흄AI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2라운드 투자자 모집에 참여키로 했다. LG가 실력 있는 초기 AI 스타트업에 ‘팔로우 온 투자’(후속 투자)를 한 건 흄AI 뿐이 아니다. LG는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용 캐릭터를 만드는 인월드AI에 대해서도 시리즈 A(2022년)와 시리즈 B(2023년) 투자에 연거푸 참여했다.
LG의 눈은 정확했다.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인월드AI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란 LG의 예상이 맞아 떨어지면서 설립 2년 밖에 안 된 이 회사의 몸값은 5억 달러로 치솟았다. 업계 관계자는 “LG는 스타트업을 통째로 매입하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벤처기업들의 기술 개발 과정 등을 지켜보며 투자 규모를 늘리는 방식을 택한다”고 말했다.
투자 기업을 선정할 때 방점은 LG 계열사 협업 여부에 꽂혀 있다. 인월드AI의 기술을 활용해 LG유플러스가 메타버스 서비스 ‘키즈토피아’의 글로벌 버전을 출시한 게 대표적이다. 영국 이트론 테크놀로지스는 LG에너지솔루션과 시너지를 노리고 투자한 케이스다. 이 회사는 AI 기반으로 배터리 잔여 수명을 측정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LG는 LG 배터리와의 시너지를 노리고 지난 1월 시리즈 A 투자에 참여했다. LG가 투자한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사 앤스로픽, AI 웨어러블 디바이스 개발기업 휴메인, 스마트 물류 솔루션 기업 벤티 테크놀로지 등에 초기 투자자로 나선 것도 같은 이유다.
○“AI 선점에 미래 달렸다”
LG가 여러 AI 스타트업에 ‘씨’를 뿌리는 건, “AI 관련 기술과 서비스를 가능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구광모 LG 회장의 주문에서 비롯됐다. 구 회장은 이를 위해 2018년 취임 직후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업형벤처캐피탈(CVC)인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설립했다.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으로부터 조달한 자금 1조원으로 투자 펀드를 굴리고 있다. 투자 분야는 AI를 비롯해 바이오, 배터리, 모빌리티, 신소재 등이다. 각 스타트업들의 사업성은 관련 계열사가 점검하고, 투자는 CVC를 통해 집행하는 구조다. 지난 6년간 70여곳에 수천억원을 투자했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기업 판도는 AI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LG가 지금은 스타트업 지분투자에 집중하고 있지만 좋은 매물이 나오면 아예 통째로 사들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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