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떨어뜨리고 잃어버려서 30만원짜리 중고 갤럭시S21을 사줬어요."
지난 5일 올해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자녀를 둔 전업주부 김모 씨(40)는 "중고라서 처음엔 망설였는데 물건을 받아보니 제품 상태가 생각보다 좋아 만족스럽다"며 이 같이 말했다. 김 씨는 "원래 아이가 쓰던 폰은 갤럭시A 시리즈였는데 더 높은 사양을 원해 이번에 중고로 바꿔줬다"고 했다.
2021년 1월 출시된 갤럭시S21 기본 모델을 구매하려면 현재 온라인 기준 최저 90만~1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거래되는 가격대는 대략 30만원 내외다. 새 폰을 사는 것보다 최대 70만원가량 절약할 수 있는 셈. 김 씨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신이 쓰고 있는 갤럭시S24 울트라 모델을 물려줄 생각이라고 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 1월 출시한 갤럭시S24 시리즈 가운데 최고 인기 모델 '갤S24 울트라(512GB 기준)'의 출고가는 184만1400원이다. 동일 사양으로 전작인 갤럭시S23 울트라(172만400원)보다 가격이 12만1000원 인상됐다. '고가폰 대명사' 애플의 최신작 아이폰15 중 프로와 프로맥스 모델(512GB 기준)의 출고가는 각각 200만원, 220만원에 달한다. 국내 휴대폰 평균 구매가격(약 87만원)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다.
인기 스마트폰 한 대 값이 한번 사면 최소 5년은 쓰는 냉장고, TV, 세탁기 가격과 맞먹는 셈이다. 10여년 간 스마트폰을 2년마다 교체했던 직장인 이모 씨도 "휴대폰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지난해 3년 만에 아이폰12에서 아이폰15로 바꿨다"며 "200만원이나 주고 샀는데 계속 바꿔줘야 하니 너무 부담스럽다. 최대한 오랫동안 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스마트폰 가격이 오르면서 휴대폰 교체 시기를 늦추거나 아예 중고폰을 구매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20대 대학생 박모 씨는 "아직 용돈 받는 처지에 150만원 넘는 새 폰을 사기는 그렇다. 앱을 다 지우고 기본 기능만 쓰기 때문에 2년 된 중고폰을 구매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 업계 관계자 역시 "최근 스마트폰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교체 주기가 확실히 길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국내 스마트폰 교체 주기는 매년 길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전문업체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국내 휴대폰 교체 주기는 2020년 하반기 기준 27.9개월로 2012년 하반기 23.9개월에 비해 4개월 늘어났다. 같은 기간 휴대폰 구매금액은 30만원대에서 67만원대로 2배 이상 올랐다. 스마트폰 구입비가 상승한 최근엔 교체 주기가 더 길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간 국내에선 중고나라·당근마켓 등에서 주로 중고폰 판매가 이뤄졌으나, 중고폰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자 제조사부터 통신업계까지 다양한 사업자가 하나 둘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국내에서 리뉴드폰(Re-Newed)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리뉴드폰은 반품된 정상 제품이나 초기 불량품, 전시품 등을 정비해 정상가보다 싸게 판매하는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해외 시장에서 '인증 중고폰(Certified Re-Newed) 스토어'란 이름으로 해당 사업을 운영 중이다. 구매자 입장에선 '새 폰' 같은 중고폰을 최대 50%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다만 서비스 출시 시점이 미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해당 사업과 관련해 결정된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애플은 '인증 리퍼비시'를 운영 중이다. 중고 제품 성능을 1년간 보증하고 가격을 직접 책정해 새 제품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제도다. 제조사가 직접 중고 거래·인증 사업에 뛰어들면 중고가 방어 등 브랜드 가치 하락을 막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통신업계도 중고폰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LG유플러스의 자회사 미디어로그는 지난해 1월 중고폰 매입 플랫폼 '셀로'를 출시했다. 예상 가격을 확인하고 방문 택배나 편의점 택배로 수거 신청을 하면 된다. 셀로는 출시 13개월 만에 가입자 150만명을 돌파했다. SK텔레콤은 SK네트웍스 자회사 '민팃'과 협력해 중고폰 사업을 하고 있다. KT도 유통 전문 자회사 KT엠앤에스를 통해 중고폰 매입 플랫폼 '굿바이'를 운영 중이다.
미디어로그 관계자는 "최근 중고폰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가입자 수도 늘고 있다"며 "거래 물량은 지난해 대비 현재 3배가량 증가했다. 과거엔 쓰던 폰은 서랍에 넣어두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2년 정도 되는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현금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마트폰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가격 민감도가 높아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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