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장인들 사이 "반차(반일 휴가) 내고 달려가야지만 먹을 수 있다"는 노점상이 있다. 서울 동대문 명물로 자리 잡은 '동대문 크레페 할아버지'가 그 주인공이다. 말 그대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크레페 노점인데, 수년 전부터 알 사람은 다 안다는 '가성비 맛집'으로 입소문 난 곳이다. 최근에는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되며 재조명받더니, 시민들의 관심이 더 쏠리고 있다.
지난달 17일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는 멤버들이 '직장인 반차 체험'에 도전하며 이곳을 방문해 화제를 모았다. 모델 주우재는 "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봤어요. 크레페 할아버지"라며 놀라워했고, 갓 나온 따끈한 크레페를 받아본 방송인 유재석은 "너무 맛있다. (왜 사람들이) 기다리면서 먹는지 알겠다. 이거야말로 꿀맛이다"고 감탄했다.
7일 오전 11시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3번 출구를 바로 나오자마자 크레페 할아버지의 노점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날 우중충한 날씨를 뚫고 오픈런에 합류한 손님은 30여명에 달했다. 수량이 '70개'로 한정 판매되기 때문에 일찍 와야지만 맛볼 수 있는 탓에 역 입구까지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온라인상에도 "3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겨우 먹었다", "'찐(진짜)' 오픈런 맛집" 등 후기가 이어졌다.
실제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반차 내고 먹는 음식'으로도 불리고 있었다. 인근 회사에 다니는 30대 직장인 이모 씨는 "원래 이 주변에서 인기가 많은 건 알고 있었는데 방송을 보고 관심이 생겨서 처음 줄 서서 먹게 됐다"며 "크레페를 파는 곳이 서울에 3~4곳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기본에 충실한 맛이어서 이곳이 제일 맛있다고 소문나있다"고 귀띔했다. 옆에 있던 이씨의 동료도 "수량이 한정돼있다 보니 희소성이 있다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크레페 당 가격은 4000원~5000원으로 손님들 사이 저렴한 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식사 대용으로 하기에 좋고, 디저트로도 크게 부담도 없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2015년부터 크레페를 팔기 시작했다는 크레페 할아버지는 "예전보다 손님들이 많아졌고 줄도 더 길어졌다"며 "그중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크레페의 달콤한 맛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이런 맛을 좋아하면 먼 지역에서도 많이 오고, 동대문을 찾은 외국인들도 관심을 많이 가진다"고 설명했다.
크레페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구워 둥글게 만 뒤, 과일과 생크림,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속 재료를 얹어 먹는 음식이다. '두르르 말린(curled)'을 뜻하는 라틴어 '크리스파(crispa)'에서 유래한 프랑스 요리에 해당한다. 이곳 크레페 종류는 약 5가지로 다양했다. 할아버지는 재료가 되는 딸기, 바나나 등 과일은 직접 공수해 왔고, 과일에 조금이라도 멍든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잘라 버리고 새로운 재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딸기 3개와 바나나 1개가 통째로 들어가는 '누텔라 딸기 바나나 크레페'가 인기 메뉴였다. 따끈하게 구워 나온 크레페를 받은 손님들은 '인증샷'도 놓치지 않았다. 수업이 없는 시간을 활용해 찾았다는 대학생 박모 씨는 "워낙 유명하다고 해서 꼭 먹고 SNS에 후기를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경기 부천에서 왔다는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워낙 SNS에서 맛있다고 소문나서 '나도 여기 멀리까지 와서 먹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웃음 지었다.
특히 이날 만난 손님들은 "거리 음식임에도 위생 관리가 철저해서 좋다"고 입을 모았다. 할아버지가 하나를 만들 때마다 새로운 장갑으로 바꿔 끼는 데다, 주변 환경 또한 늘 깨끗함을 유지한다는 평가다. 김씨는 "남편이 유튜브에서 보고 알려준 가게인데, 이미 이 할아버지가 위생적으로 노점을 운영한다고 소문이 나 있더라"며 "요즘 노점 음식들은 위생 논란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깨끗하게 운영되는 데다 맛있다고 하니 인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이토록 유난히 청결을 강조하는 데에는 항상 "내가 먹는다"는 생각과 함께, 길거리 음식도 깨끗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는 "먹는장사를 하니까 특히 위생을 신경 쓰는데, 특히 노점상의 경우에는 겉으로 보여지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이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데 '기본'을 지키지 않는 건 용납 못 한다"고 강조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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